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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제공 |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지식인이자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의 서거 9주기를 맞아 세계 각지에서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추모가 이어졌다.
현지 시간 7월 13일 저녁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류샤오보 기념 벤치’ 주변에는 중국 민주화운동가와 인권단체 관계자 등 10여 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흰 꽃과 촛불을 놓고, 류샤오보를 상징하는 빈 의자를 마련해 중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생을 바친 한 지식인을 추모했다. 기념 벤치는 센트럴파크 서쪽 96번가 입구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류샤오보는 2017년 7월 13일 향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국가정권 전복 선동죄’로 선고받은 징역 11년형을 복역하던 중 말기 간암 진단을 받았다. 당국은 그에게 형식적으로 의료가석방을 허용했지만 병원에서도 무장 경비와 감시를 계속했고, 본인과 가족이 원했던 해외 치료도 허가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중국 당국의 통제 아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였던 류샤오보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학자의 길에서 현실 정치와 인권운동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단식농성에 참여했으며,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한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이후에도 표현의 자유와 정치개혁, 중국 사회의 민주화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은 2008년 발표된 ‘08헌장’이었다. 류샤오보를 비롯한 중국 지식인과 인권운동가들은 헌법에 따른 통치, 사법부 독립, 표현과 결사의 자유, 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정권은 평화적인 개혁 요구를 국가 전복 시도로 규정했고, 류샤오보에게 징역 11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수감 중이던 류샤오보는 2010년 “중국의 기본적 인권을 위한 오랜 비폭력 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그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고 가족 역시 중국 당국의 통제로 오슬로에 갈 수 없었다. 노벨위원회는 시상식장에 빈 의자를 놓고 그 위에 메달과 상장을 올렸다. 그날의 빈 의자는 이후 중국의 양심수와 억압받는 자유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표상이 됐다.
류샤오보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나는 적이 없다”는 선언이다. 자신을 투옥하고 자유를 빼앗은 권력에 대해서도 증오와 폭력이 아닌 관용과 비폭력으로 맞서겠다는 신념이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그를 중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운 비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류샤오보가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거나 추모하는 것조차 위험한 행위로 취급되고 있다. 국제펜과 미국펜센터 등은 13일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 당국이 류샤오보의 글과 이름을 계속 검열하고 있으며, 그를 평화적으로 추모한 작가까지 처벌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중국 인터넷과 인공지능 서비스에서도 류샤오보에 관한 질문과 정보가 차단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샤오보의 유골은 사망 직후 바다에 뿌려졌다. 중국 당국은 이후에도 그의 지인과 지지자들에게 추모행사를 열지 말라고 압박했으며, 일부 인권운동가들을 민감한 시기에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무덤도, 묘비도 남지 않았지만 바다와 빈 의자, 촛불과 흰 꽃은 오히려 그의 존재를 세계 곳곳에 확산시키는 새로운 추모의 상징이 됐다.
중국인들에게 7월 13일은 이제 한 사람의 기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이 역사를 지우려 할수록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다는 것, 자유는 권력의 시혜가 아니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존엄한 권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날이 되고 있다.
2026년 뉴욕의 여름밤, 센트럴파크의 작은 벤치 옆에 놓인 빈 의자는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류샤오보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가 추구했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비폭력의 정신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한 중국 공산당이 완성하려는 망각도 완성될 수 없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