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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가 황해남도 연백벌 지방의 전통 민속무용인 ‘연백농악무’를 소개하며 이를 농업근로자들의 기쁨과 풍요로운 생활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흥겨운 북장단과 풍작을 경축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오늘날 북한 농촌이 처한 구조적 현실을 가릴 수 없다.
신보는 연백농악무가 황해남도 청단·연안·배천 일대에서 발전한 전통 예술형식이며, 원시농업의 발생과 함께 풍작을 기원하거나 경축하는 의식수단으로 창조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백지방이 주요 곡창지대인 까닭에 농악무가 다른 지역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농악무가 오랜 세월 농민들의 노동과 공동체 생활 속에서 형성된 귀중한 전통문화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이러한 민속문화를 주민들의 자발적 생활문화가 아니라 체제의 성과와 농업정책을 선전하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매체의 설명에는 농악무를 탄생시킨 농민들의 구체적인 삶과 애환이 보이지 않는다. 농민들이 어떤 환경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수확한 곡식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식량 부족과 자연재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오직 “기쁘고 즐거울 때마다” 춤을 추고, 국가 행사와 공연에서 “절찬”을 받는다는 선전 문구만 반복된다.
하지만 문화유산의 가치는 국가 행사에 얼마나 자주 동원되는가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농악은 본래 권력이 지시해 펼치는 정치 공연이 아니라, 농민들이 공동노동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마을의 화합과 풍년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생활문화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연백농악무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존중하려 한다면 먼저 그 문화를 만들어온 농민들의 존엄과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농민들에게 생산과 분배의 실질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강제적인 노력 동원과 사상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풍작은 북을 크게 울리고 춤을 화려하게 춘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정적인 농업 기반과 합리적인 생산제도, 농민의 자율성, 투명한 식량 분배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선전은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농악무의 흥겨운 장면만을 부각하고 있다.
특히 연백벌이 북한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곳 농민들의 실제 생활은 공개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진정한 풍년이라면 국가가 이를 선전하지 않아도 주민들의 식탁과 시장, 생활 수준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인돼야 한다. 주민들의 삶은 감춘 채 무대 위의 춤만 보여주는 것은 문화 소개라기보다 현실을 미화하는 선전극에 가깝다.
민속문화는 어느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연백농악무 역시 노동당이나 국가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한반도의 농민들이 흙과 땀 속에서 형성한 공동체의 유산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민족문화의 모든 성취를 체제의 보호와 지도 덕분인 것처럼 포장하며 주민들의 자발성과 역사적 주체성을 지우고 있다.
농악의 북소리가 진정한 풍요와 기쁨을 알리는 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선전무대가 아니라 농민들의 현실부터 달라져야 한다. 먹을 것이 부족한 주민들 앞에서 풍작을 경축하는 춤을 반복하는 것은 문화유산의 계승이 아니라 고단한 삶을 장식물로 이용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연백농악무를 체제 선전의 배경음악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스스로 풍년을 기뻐하고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사회적 조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농악의 흥겨움과 농촌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풍작을 경축하는 의식수단’이라는 선전은 공허한 북소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