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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은 평양시에서 대규모 도로포장과 하천 정리사업이 진행됐다며 도시경영과 생태환경 보호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도시 기반시설의 건설과 유지·보수를 각 기관과 단위, 주민들에게 할당하고 실적 경쟁을 강요하는 북한식 동원체계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신은 올해 들어 평양시에서 20만1,300여㎡의 도로포장공사와 140리 구간의 하천정리사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또한 주택과 공공건물 보수, 원림경관 조성, 4만여㎡에 달하는 보행로 정비도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이 정상적인 국가예산과 전문 행정조직의 책임 아래 추진됐는지, 아니면 각 기관과 주민들에게 인력과 자재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는지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국의 책임을 주민에게 전가한 ‘㎡당 책임제’
북한 당국은 이번 사업이 이른바 ‘㎡당 책임제’ 원칙에 따라 추진됐다고 강조했다. 시내 모든 부문과 단위, 지역에 담당 구간을 지정하고 관리 실적을 일별·주별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책임행정을 강화하는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가 담당해야 할 도시 관리 업무를 기관과 기업소, 주민들에게 분할 할당하는 강제 동원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담당 면적을 정해주고 매일·매주 실적을 평가한다는 것은 자율적인 시민 참여라기보다 상명하복식 경쟁과 압박에 가깝다.
도로와 하천은 전문적인 설계와 안정적인 예산, 숙련된 기술인력에 의해 관리돼야 할 공공 인프라다. 이를 정치적 충성심과 집단 동원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공사의 품질과 안전성을 장기간 보장하기 어렵다.
통신은 중구역과 선교구역이 “기술규정의 요구를 준수”하며 공사를 짧은 기간에 끝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공사비와 자재 조달 방식, 안전검사 결과, 하자 발생 여부 등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속도와 실적만을 앞세우는 북한식 건설문화가 부실시공과 반복적인 보수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도시민의 헌신’이라는 이름의 노동 동원
보도는 4만여㎡의 보행로 보수가 “수도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당국이 주민 노동력을 도시정비사업에 광범위하게 동원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정상적인 도시 행정이라면 도로와 보행로 보수는 세금과 국가예산을 통해 전문 업체와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국가가 제공해야 할 공공서비스조차 주민들의 무보수 또는 저보수 노동에 의존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당국은 이를 ‘애국’과 ‘헌신’으로 포장하지만, 주민들이 작업 참여를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는지, 정당한 임금과 안전장비를 제공받았는지, 사고 발생 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주민의 희생을 국가의 업적으로 전환하는 전형적인 선전 방식이다.
평양에 집중되는 자원.. 지역 간 격차는 외면
이번 보도는 평양의 도로와 하천, 공원과 휴식공간이 개선됐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그러나 북한의 한정된 자원과 인력이 수도에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동안 지방 주민들의 생활환경은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평양은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당국은 주요 도로와 건물, 공원과 강변을 정비해 외부에 현대적인 수도의 모습을 과시하려 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북한 주민 전체의 생활수준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양의 일부 구간을 포장하고 화단과 돌의자, 정원등을 설치하는 동안 지방에서는 낡은 도로와 상하수도, 전력 부족, 주택 노후화 문제가 계속될 수 있다. 수도의 외관을 치장하는 사업보다 주민들의 식량과 의료, 주거, 위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실적 숫자보다 필요한 것은 투명한 행정
북한 당국은 도로포장 면적과 하천정리 거리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하며 사업의 규모를 강조했다. 하지만 예산 집행 내역과 노동 조건, 공사 품질, 주민 만족도는 공개하지 않았다.
숫자만 나열한다고 도시행정의 성과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사업의 진정한 평가는 얼마나 많은 주민을 동원했는지가 아니라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도로와 하천을 정비하고 시민 휴식공간을 조성하는 일 자체는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의 책무를 주민의 ‘헌신’에 의존하고, 일별·주별 평가를 통해 실적을 압박하며, 그 결과를 지도부의 치적으로 선전한다면 그것은 현대적 도시행정이 아니라 낡은 동원통치에 불과하다.
평양의 포장도로와 새로 설치된 돌의자 뒤에는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노동했는지, 정당한 보상을 받았는지, 어떤 재원이 사용됐는지가 감춰져 있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주민을 위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선전용 숫자와 충성 경쟁부터 내려놓고 예산과 행정의 투명성,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