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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01] 교황과 적그리스도 - ①

2026-07-16 07:16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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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 Peter Thiel is a technology entrepreneur, author, and investor. 기술 기업가


나는 최근 로마에서 적그리스도를 주제로 강연했다. 내가 적그리스도에 관심을 갖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도 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대부분을 놓고 본다면, 바로 그러한 침묵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임박했다는 분명한 징표로 여겨졌을 것이다(2베드 3,3-4).

나는 교회가 내 강연을 무시하리라고 예상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고, 공개 강연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이 주제는 내가 보기에 오버턴 창, 곧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담론의 범위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명목상 비밀로 되어 있던 강연장 밖에 파파라치들이 몰려든 모습을 보니, 내 강연은 내가 바랐던 만큼 비공개가 아니었던 듯했다. 첫 번째 강연이 끝난 뒤 직원들은 이탈리아 언론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강연에 참석하지도 않았던 한 사제는 내가 이단죄로 화형에 처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말한 이단은 신학적 이단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적 합의에 대한 이단’이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더욱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명해 보겠다.

나는 교황보다 더 가톨릭적인 사람이 되려고 로마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인 나조차도 평균적인 가톨릭 신자보다는 더 가톨릭적이고 싶었다. 내가 강연에서 설명했듯이, 이 기준을 넘는 방법은 간단하다. 베네딕토 교황이 교좌에서 공식적으로 말할 때뿐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할 때에도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러면 처음에는 속삭이다가 마침내 외치는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세상은 끝나고 있다.”

베네딕토는 자신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이 주장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베네딕토가 생애 마지막 몇 해가 되어서야 이 주제에 관해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이미 교황직에서 사임했고, 그의 협력자들은 바티칸 지도부에서 축출되었으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왜 그토록 오래 기다렸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명성에 기반을 둔 권위가 손상될까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종말을 설교하는 것만큼 학문적 권위와 어울리지 않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좀 더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베네딕토는 자신의 묵시적 예언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 양 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교회에서 멀어지게 할까 염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묵시적 순간에 관한 솔직한 토론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인구 붕괴, 핵무기가 초래하는 실존적 위험을 이해하고 두려워한다.

베네딕토는 젊은이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구체적 모습, 곧 종말에 앞서 나타날 전체주의적 ‘평화와 안전’에 관해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대화는 우리가 “불안해하지 말라”(마태 24,6)는 용기를 찾는 가운데 희망을 품어야 할 이유도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 대화를 이끌기에 베네딕토보다 더 자격 있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없이 이 일을 해내야 한다. 교회에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려주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베네딕토는 이미 그렇게 했다. 나의 친구 샘 울프와 함께 쓴 이 글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다.

내가 겸손하게 바라는 것은, 베네딕토가 이루지 못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이루는 것이다. 곧 다음의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어둠의 시간이 닥쳐오는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미래에 대한 믿음을 되찾을 수 있는가?’

젊은 요제프 라칭거는 종말론에 매혹되어 있었다. 때로 자서전은 전기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춘다. 라칭거가 1957년에 쓴 『성 보나벤투라의 역사신학』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원칙이다. 이 책은 독일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을 자격을 부여한 그의 교수자격논문이었다.

라칭거는 이렇게 썼다.

“보나벤투라의 역사신학에는 종말론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투쟁이 담겨 있다. … 역사신학은 보나벤투라 사상의 고립된 한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1260년대와 1270년대의 격렬한 논쟁에 그가 참여하도록 만든 근본적인 철학적·신학적 결단과 연결되어 있다.”

라칭거가 이 ‘논쟁들’을 파헤친 것은, 7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 논쟁들을 오늘날에 적용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덧붙였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신학은 자신의 역사와 계속 접촉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라칭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지, 신학이 왜 자신의 역사와 접촉해야 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역사가의 임무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오직 그 연구 결과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 때때로 이러한 한계가 나를 괴롭혔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보나벤투라에 대한 라칭거의 해설은 그의 천재성을 확립했다. 그는 중세적인 보나벤투라 사상의 밀도를 현대인의 정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겼다.

논의를 전개해 가면서 라칭거는 교회가 수 세기 동안 방치해 온 질문들, 곧 그리스도교의 신비로운 핵심에 닿아 있는 문제들에 곧 판정을 내릴 것처럼 보인다. 그 핵심에는 라칭거가 논문의 마지막 부분을 할애한 문제가 놓여 있다.

세상은 어떻게, 그리고 언제 끝날 것인가?

12세기 피오레의 수도원장 요아킴이 제시한 묵시적 예언은 교회를 분열시켰다. 요아킴은 역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비추는 거울이며, 최후의 세계 지배자인 적그리스도가 곧 제3시대를 열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 시점을 1260년으로 특정하기까지 했다.

요아킴은 그 적그리스도가 교황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보나벤투라는 요아킴주의자들을 반박하면서 적그리스도가 도래할 정확한 날과 시간을 그들이 확신하는 데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의 유혹에도 저항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인 경쟁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보인 인식론적 겸손이었다. 토마스에게는 “세상의 종말이 예상되는 시기를 길든 짧든 확정할 수 없다.” 라칭거의 설명에 따르면 토마스의 가르침에서는 “종말론적 의식이 배경으로 물러난다.”

보나벤투라는 서방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복원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아베로에스주의적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비판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철학은 세계의 영원성, 운명의 필연성, 지성의 단일성을 가르쳤다.

보나벤투라는 이 세 가지 학설을 요한 묵시록 13장 18절에 나오는 ‘666’이라고 규정했다. 라칭거는 이 세 학설 가운데 보나벤투라가 특별히 첫 번째 학설, 곧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고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관념을 “원초적인 이단이며 묵시적 괴물의 본질 그 자체”로 간주했다고 지적한다.

이 위대한 논쟁에서 라칭거는 보나벤투라의 편에 섰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정확한 날과 시간을 모른다고 해서, 그 문제에 무관심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쟁이 20세기와 그 이후의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 라칭거는 침묵했다. 그는 각주에서 자신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였던 고틀리프 죙엔의 말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보나벤투라의 경우를 보면, 묵시적 표상에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묵시적 표상은 강둑을 넘쳐흐르는 급류와 같아서 그 범위를 제한하기 어렵다. 그 이미지를 아무리 완화하려 해도 묵시적 어조가 우세해진다. 모차르트라 할지라도 나팔이 나팔 소리를 내는 것을 잊게 만들 수는 없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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