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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를 쓰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국가인권위 직원들의 모습 |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정치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힐 때 얼마나 편향적이고 난폭한 조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국가인권위원회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권위 사무처 30개 전 부서 직원들이 이른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의결을 문제 삼아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단 성명에 참여했다고 한다. 과장급 간부들의 보직 반납에 이어 노조까지 위원장 사퇴 압박에 가세했다.
국가기관 내부의 의견 표명이라는 차원을 넘어, 조직 전체가 특정한 정치적 결론을 강요하며 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실로 야만적이다.
도대체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는 인권위가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개인’에는 정치적으로 지지받는 사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는 물론이고 피의자, 수형자, 권력자, 전직 대통령, 심지어 국민적 비난을 받는 사람까지 포함된다. 인권은 선량하다고 인정받은 사람에게 국가가 베푸는 포상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권리다.
그런데 지금 인권위 직원들은 전직 대통령에게도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로 기관장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 이는 인권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행동이 아니라 인권에 정치적 자격심사를 도입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것은 무죄를 선고하라는 말이 아니다. 수사를 중단하라는 뜻도 아니며, 정치적 책임을 면제하라는 주장도 아니다. 혐의가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법률에 따른 절차와 변론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는 근대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피의자의 방어권은 권력자를 위한 특혜가 아니라 국가의 자의적인 형벌권 행사로부터 모든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오늘은 미운 전직 대통령의 방어권을 박탈하고, 내일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과 시민단체의 방어권을 제한하며, 모레는 평범한 국민에게 “당신은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법치주의가 가장 혐오받는 사람의 권리까지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5년 2월 인권위가 의결한 내용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방어권을 보장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라는 취지였다. 이에 대한 찬반이나 법적 타당성을 놓고 인권위원들이 토론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2026년 7월 13일 전원위원회에서도 기존 권고안을 폐기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자는 안건을 놓고 위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발의 위원들은 상정을 요구했고, 반대 측에서는 이미 의결된 안건을 폐기하는 절차와 전례가 불분명하다며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안건 상정은 보류됐다.
민주적 기관이라면 이러한 이견을 회의와 표결, 규정과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사무처 전체가 집단 성명과 보직 반납을 앞세워 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토론이 아니라 조직적 위력 행사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관장 퇴진을 요구하고 업무 수행을 흔드는 행위는 민주적 숙의가 아니라 정치투쟁에 가깝다.
더구나 사무처는 전원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조직이다. 사무처 직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이념적 판단을 기준으로 전원위원회의 결정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려 든다면 인권위의 의사결정 구조는 붕괴한다. 앞으로 인권위원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처 직원과 노조가 어떤 집단행동을 벌일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인권위의 독립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직원들은 안 위원장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들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기관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조직 전체의 이름으로 의결 내용을 뒤집으려는 행동이 과연 독립성을 지키는 일인가. 독립성이란 자신들이 동의하는 결론을 내릴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언론과 내부 직원들의 압력으로부터 독립해 불편한 결론까지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현재 인권위 내부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심각하다. 노조는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인사들을 ‘내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방어권 보장 주장을 ‘혐오세력의 주장’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유죄 여부와 형사책임의 범위는 법원의 재판을 통해 확정돼야 한다. 국가인권기관의 직원들이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도 전에 정치적 낙인을 찍고, 그 낙인을 근거로 인권 보호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인권옹호가 아니라 인민재판의 사고방식이다.
인권은 진영의 전리품이 아니다. 좌파의 인권과 우파의 인권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민주당 지지자의 인권과 국민의힘 지지자의 인권이 다를 수도 없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의 피의자에게는 무죄추정과 방어권을 외치면서 반대 진영의 피의자에게는 “내란 세력에게 무슨 인권이냐”고 외친다면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 선택적 정의다.
우리는 소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선택적 정의가 얼마나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목격했다. 평소에는 공정과 정의, 피의자 인권과 검찰개혁을 외치던 사람들이 자기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원칙을 바꾸고 법의 잣대를 달리 적용했다. 그 결과 정의라는 말 자체가 진영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로 전락했다. 지금 인권위에서 벌어지는 사태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보호하고 싶은 사람의 인권만 인권이고, 정치적으로 증오하는 사람의 방어권은 특혜라고 주장하는 순간 국가인권위원회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인권위원회가 특정 이념집단의 정치투쟁 기구로 변질된다면 국민이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이 조직을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다.
안창호 위원장의 판단과 의사 진행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법과 규정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전원위원회의 정식 절차를 통해 재논의하고, 필요하다면 표결로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러나 사무처 전 부서가 집단으로 기관장 퇴진을 요구하고 보직을 반납하며 조직을 흔드는 것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국가기관을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관철하기 위한 점거 대상으로 여기는 오만이다.
인권위 직원들은 먼저 자신들에게 물어야 한다.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국민도 보호할 수 있는가. 국민적 비난을 받는 피의자의 방어권도 인정할 수 있는가. 선거에서 패배하고 권력을 잃은 정치인에게도 법률이 정한 절차를 보장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이들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인권위 사무처는 집단적인 기관장 퇴진 투쟁을 즉각 중단하고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와 국회도 이번 사태를 단순한 내부 갈등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국가기관 직원들의 조직적 정치행위와 업무 마비 시도, 의사결정 구조 훼손 여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인권위가 끝내 선택적 정의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은 묻게 될 것이다.
“모든 국민의 인권을 지키지 않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과연 왜 필요한가.”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