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여유롭게 건배잔을 들고 있을 때인가.
19일 청와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 당대표 경선에 나섰던 정청래·송영길 후보 등이 한자리에 모여 만찬을 갖고 건배했다. 청와대는 이 자리에서 이른바 ‘더 강한 원팀’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는 없다. 정치에는 만남도 필요하고 당정 간 소통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정에는 때와 장소가 있고, 대통령의 한 장면에는 그 정부의 상황 인식이 담긴다.
한미동맹의 핵심 군사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국방부에 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했다. 비용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대이란 정책까지 언급했다. 한미연합방위태세의 핵심 자산이 다른 외교·안보 현안과 뒤섞여 거래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더 놀라운 장면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김정은과 올해 안에 만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탄두 숫자를 공식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직 미국 대통령이 이처럼 구체적인 숫자까지 언급한 것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한은 핵을 내려놓기는커녕 미사일을 쏘고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안보 지형이 지금 말 그대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라고 한가한가.
불과 얼마 전 코스피는 급등 뒤 급락을 반복하며 극심한 변동성을 겪었다. 지난달 말 급락 과정에서는 5,000선대로까지 밀렸고, 최근 다시 7,000선을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의 거래 참여와 투자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의 폭락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쏟아낸 물량을 개인들이 대규모로 받아내기도 했고, 반대매매의 공포를 견디지 못한 이른바 ‘빚투 개미’들이 시장에서 밀려났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더구나 정부의 ISA 개편과 ‘주가 누르기 방지’ 방안은 청년층과 개인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대통령이 직접 “왜 그렇게 했느냐”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는 상황까지 갔다.
정부가 시장을 직접 폭락시켰다고 단순화할 일은 아니다. 국제 금융시장과 금리, 외국인 수급 등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국민에게 투자를 권하고 ‘생산적 금융’을 외치던 정부라면 적어도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정책 혼선만큼은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특히 청년들의 절망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전셋집 한 칸 마련하기도 어려워 월급을 아껴 주식시장으로 들어간 청년, 대출까지 끌어다 투자했다가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을 잃은 직장인, 노후자금을 시장에 넣었다가 폭락장을 맞은 서민들에게 코스피의 숫자는 단순한 지수가 아니다. 그 숫자 하나하나가 월급이고 전세금이고 결혼자금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종잣돈이다.
거리의 풍경도 서늘하다. 몇 달 전까지 있던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간판이 걸렸다가 다시 내려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본다. 온 재산을 끌어모아 가게 하나 열었던 자영업자에게 폐업은 통계 한 줄이 아니다. 한 가족의 생계가 무너지는 일이다.
그런 국민의 눈앞에 비친 것이 청와대의 웃음과 건배잔이다. 정치인들은 “원팀”을 외치며 잔을 부딪치지만 국민은 묻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원팀인가.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축배가 아니라 위기의식이다.
국민이 곡소리를 내는데 권력자들끼리 웃으며 잔을 맞대는 장면은 아무리 좋은 취지의 만찬이라 해도 아름답게 보일 수 없다. 국민이 어려울수록 지도자는 자신의 말과 표정과 행동 하나까지 무겁게 관리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의 품격이며 국가 지도자의 책임이다.
나라 안에서는 개미들이 울고 자영업자들이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으며, 나라 밖에서는 동맹과 북핵을 둘러싼 거대한 판이 흔들리고 있다.
청와대가 지금 들어야 할 것은 서로의 건배사가 아니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안보 현장에서 들려오는 국민의 경고음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