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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돋보기] 김여정의 ‘국제정세론’

2026-08-20 12:22 | 입력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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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를 말하며 ‘섬멸’을 위협한 북한의 이중잣대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정세, 일본의 군사력 강화, 한미연합훈련 등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한 입장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그러나 장문의 담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려라기보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정당화하면서 미국·한국·일본의 안보 조치는 일방적으로 ‘패권’과 ‘도발’로 규정하는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김여정은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입장에서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 책임을 미국과 서방에 돌리고, 러시아의 행동을 “국가의 주권과 안전이익, 영토완정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기본 구도가 러시아의 주장과 사실상 일치하고 있음을 다시 보여준다. 전쟁 당사국의 책임과 주권 문제를 균형 있게 다루기보다 모든 사태의 원인을 미국과 서방의 대러 압박으로 환원하고, 러시아의 군사행동에는 ‘정의’라는 표현까지 부여했다.

더욱이 김여정은 북한군 ‘추가 파병설’을 우크라이나 측이 만들어낸 “자작극”이라고 부인하면서도 북러 간 협력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에 따른 “주권적 권리행사의 합법적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러 조약의 “동맹적 성격”과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거듭 확인했다.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서는 ‘주권적 권리’와 ‘동맹의 의무’를 강조하면서 한미동맹의 방어적 군사협력은 ‘적대행위’라고 규정하는 논리적 모순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본을 향한 발언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김여정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잠재적이며 전망적인 위협”으로 규정한 뒤 일본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즉시적이며 생존불가한 섬멸적 맹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담화 첫머리에서 세계 각지의 충돌과 긴장을 걱정하며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당사자가 불과 몇 문단 뒤 특정 국가를 향해 사실상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평화를 말하면서 ‘섬멸’을 위협하고, 군사적 긴장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군사공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번 담화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자기모순이다.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주장 역시 기존 북한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여정은 미국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한미연합훈련 축소에 대해 “평할 가치도 없다”,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 훈련 규모나 기간이 줄어들더라도 연합훈련의 “도발적, 공격적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올해 실시된 각종 한미연합훈련을 일일이 열거하고 이를 “대조선 적대감”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끊임없이 군사적 위협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의 핵·미사일 능력 증강과 북러 군사협력은 ‘자위권’과 ‘주권적 권리’라는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다. 상대의 억제력 강화는 도발이지만 자신의 군사력 증강은 방어라는 주장만으로는 한반도 긴장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외부에 돌리기 어렵다.

특히 이번 담화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태도다. 김여정은 최근 북미 정상 간 소통이 있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부인하면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갖고 있으며 “두 지도자들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과 미국의 대북정책을 의도적으로 분리하는 북한식 접근법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개인적 관계가 향후 협상의 통로가 될 가능성은 열어두되, 미국의 대북정책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핵·미사일 억제력 강화와 대미 압박 노선에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결국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한미연합훈련의 축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 억제체제 자체를 ‘적대정책’으로 규정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라는 기존 요구를 되풀이한 것이다.

이번 김여정 담화는 북한의 외교·안보 인식이 북러 군사동맹 강화, 미국 책임론, 한미일 안보협력 비난이라는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더욱 선명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북한은 세계의 군사적 긴장을 비판하면서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지지하고,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비난하면서 일본을 향해 ‘섬멸적 맹격’을 경고했으며, 한미동맹을 비난하면서 북러동맹은 정당한 주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국제질서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기보다 자신과 우방에는 ‘자위권’을, 상대에게는 ‘도발’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선택적 논리다.

북한이 정말 한반도와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면 상대의 군사훈련 축소를 폄훼하고 주변국을 향해 섬멸을 위협하기에 앞서 자신이 지속해온 핵·미사일 고도화와 군사적 위협이 지역 안보 불안을 얼마나 증폭시켜 왔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평화는 상대방의 억제력만 제거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만 자위권을 인정하고 상대의 자위권은 부정하는 논리로는 지속가능한 안보도, 진정한 대화도 만들 수 없다.

김·도·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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