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기 판매와 북한 인권 관련 사업 지원을 또다시 ‘대조선 적대정책’으로 규정하며 강력 대응을 위협했다.
그러나 북한이 문제 삼은 조치들의 성격과 한반도 안보 현실을 살펴보면, 정작 군사적 긴장을 만들어온 북한 자신의 핵·미사일 개발과 대외 군사협력은 철저하게 외면한 채 그에 대응하는 한미의 조치만을 ‘위협’으로 부각시키는 전형적인 책임 전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AIM-9X 사이드와인더 미사일과 관련 장비를 판매하기로 한 결정과 북한 인권 상황을 기록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지원 계획을 거론하며 이를 “미국의 적대적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승인한 이번 대외군사판매(FMS)는 약 1억2,500만 달러 규모로, 한국이 AIM-9X 사이드와인더 블록Ⅱ 전술미사일 103발과 전술유도장치 10기 등을 구매하는 내용이다. 북한은 이를 한국의 ‘전쟁수행능력’을 높이는 공격적 조치인 것처럼 묘사했지만, 공개된 판매 내용에서 AIM-9X는 기본적으로 공대공 미사일로 분류되고 있다.
북한 매체가 이 무기를 ‘지상목표물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미사일’이라고 부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이번 판매안의 핵심은 공중전 능력 보강임에도 북한은 공격적 성격을 극대화하는 표현을 동원해 미국과 한국이 자신들을 겨냥해 새로운 공격능력을 구축하는 듯한 인상을 주려 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이 ‘왜 한국이 첨단 방어전력을 계속 확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무기와 각종 탄도미사일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왔으며 한국과 일본, 괌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전략무기 개발을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확대하며 탄도미사일과 막대한 양의 포탄을 제공한 것으로 한국 정부가 평가하고 있다.
로이터는 한국 국방부를 인용해 북한이 러시아에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1,500만 발이 넘는 포탄을 공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자신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다른 국가의 전쟁에 무기까지 공급하면서, 한국이 동맹국으로부터 공대공 미사일을 구입하는 것은 ‘지역 안보환경을 악화시키는 적대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북한 외무성은 특히 이번 일을 근거로 미국이 북한에 “항구적으로 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이 주장 역시 현실 전체를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한미 군사훈련 일부를 축소하고 예정됐던 한미 해병대 훈련을 취소하는 등 대북 유화 신호도 보내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동시에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런 조치에는 눈을 감은 채 방어전력 판매만 떼어내 ‘항구적 적대정책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요할 때는 미국의 대화 제스처를 무시하고, 군사적 억제 조치는 확대해석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미국의 적대정책’ 서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인권 기록도 ‘체제 불안정 공작’이라는 북한
북한이 미국의 북한 인권 관련 지원사업을 군사무기 판매와 한데 묶어 ‘적대행위’로 규정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DRL)은 지난 17일 북한의 인권침해를 기록하고 북한의 선전·영향력 활동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에 총 296만여 달러를 지원하는 공모를 발표했다. 2~3개 사업을 선정해 북한 인권 실태 기록과 정보 접근 등에 활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북한은 이를 자신들의 “국가사회제도에 불안정을 조성”하기 위한 모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민의 인권 상황을 기록하고 외부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체제 전복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북한 체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외부의 인권 비판에 대해 사실관계와 제도 개선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정치범수용소, 강제노동, 공개처형, 자의적 구금, 종교와 표현의 자유 억압 등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제기해온 문제를 해명하기보다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행위 자체를 ‘적대행위’로 간주해 왔다.
미국 법률 역시 오래전부터 북한 주민의 인권과 정보 접근을 지원하고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기록하는 사업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업을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군사적 위협으로 묘사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다.
핵과 미사일은 ‘자위권’, 상대방 방어무기는 ‘전쟁책동’
결국 이번 북한 외무성 담화에서도 오래된 이중잣대가 되풀이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자위권’이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국방력 강화’이며,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확대하면 ‘주권국가 간 협력’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이 방어무기를 도입하면 ‘전쟁책동’이고, 한미가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면 ‘침략연습’이며,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조사하면 ‘체제 전복 모략’이라는 식이다.
이 논리에서는 북한의 행동은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원인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이 계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논하려면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개발을 빼놓을 수 없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강화할수록 한국은 이를 억제하기 위한 전력을 확충할 수밖에 없고, 북한이 다시 이를 ‘적대행위’라고 비난하며 추가 군비 증강의 명분으로 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북한 외무성은 이번 담화에서 외부의 “악의적 기도와 위협”에 대해 “즉시적으로 강력히 반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방어력 강화에는 군사적 보복 가능성을 내비치는 방식이다.
진정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려 한다면 한국의 AIM-9X 103발을 문제 삼기 전에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부터 설명해야 한다. 인권 문제 역시 외부의 ‘모략’이라고 몰아붙이기보다 국제사회가 왜 수십 년 동안 같은 문제를 제기해 왔는지 답해야 한다.
자신의 핵무기는 평화를 위한 것이고 상대방의 방어무기는 전쟁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쉽게 통하기 어렵다.
북한이 경계해야 할 것은 1억2,500만 달러어치 공대공 미사일이나 296만 달러 규모의 인권사업보다,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과 주민 통제가 결국 더 강력한 국제적 억제와 인권 압박을 불러온다는 현실일 것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