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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72] 돌리 파튼과 풀턴 쉰의 신앙에서 우러난 기쁨

2026-09-25 08:25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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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아퀼리나 Mike Aquilina is contributing editor at Angelus News. Angelus News 기고 편집자


돌리 파튼과 풀턴 쉰은 서로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녀는 라인스톤 장식을 즐겨 입었고, 그는 가슴에 주교 십자가를 걸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망토가 만들어낼 수 있는 극적인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졸린(Jolene)」을 노래했고, 그는 칠판 앞에서 일곱 가지 죄종, 곧 칠죄종을 설명했다. 그녀는 돌리우드(Dollywood)를 세웠고, 그는 미국 가톨릭 학교의 어린이들이 푼돈을 모아 ‘입양’하던 선교 지역의 어린이들, 이른바 ‘이교도 아이들’의 그리스도교적 미래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미국이 돌리 파튼을 애도하고, 풀턴 쉰이 세인트루이스에서 시복되는 지금, 두 사람의 닮은 점을 지나치기는 어렵다. 이들은 미국의 대중 오락계에서 성공한 인물들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들을 사랑했다.

물론 ‘모두’라는 말은 과장이다. 돌리에게도 비판자들이 있었고, 쉰에게는 그의 사목 활동뿐 아니라 한동안 그의 시복·시성 절차마저 가로막을 정도로 막강한 적들이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분열되는 문화 속에서 두 사람은 매우 드문 일을 이루어냈다. 신앙, 계층, 정치, 교육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오순절교회와 아무런 인연을 맺고 싶어 하지 않던 사람들도 돌리 파튼을 사랑했다. 가톨릭 성당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았을 사람들도 쉰 주교의 주간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Life Is Worth Living)’를 보기 위해 화요일 저녁 일정을 맞추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신앙을 감추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돌리는 하느님, 기도, 예수님, 천국, 그리고 할아버지가 설교하던 작은 오순절교회에서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복음성가를 녹음했다. 성공의 비결을 질문받으면, 하느님께 받은 재능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한 일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남편 칼 딘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돌리 자신의 죽음을 알리며 가족들은 이렇게 밝혔다. “돌리는 빛 가운데 살았으며, 이제 예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쉰은 오히려 이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에 맞는 정식 주교 복장을 갖추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섰으며, 현대인의 삶이 직면한 도덕적·영적 위기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그는 죄, 고해성사, 십자가, 공산주의, 정신분석, 모성, 교육, 영원에 대해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당시 유행하던 심리치료적 언어로 번역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설교했다.

그리고 온 나라가 그를 지켜보았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가 1952년에 시작되었을 때, 이 프로그램은 작은 듀몬트(DuMont) 방송망의 별로 유리하지 않은 시간대에 편성되었고, 맞은편에는 밀턴 벌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예언자 엘리야라 해도 이보다 더 불리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쉰의 시청자는 곧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방청권을 구하려는 수요가 방송국의 수용 능력을 압도했다.

팬레터는 마치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자루째 도착했다. 쉰은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고, ‘가장 뛰어난 인물’ 부문 에미상을 받았다. 이것은 종교 방송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상이 아니었다. 한 가톨릭 주교가 새로운 매체인 텔레비전에서 가장 큰 스타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쉰은 당시 ‘미스터 텔레비전’과 ‘엉클 밀티’로 불리던 벌과의 경쟁 관계를 즐겼다. 쉰은 자신을 ‘엉클 풀티’라고 소개했다. 벌은 두 사람이 사실 같은 고용주 밑에서 일한다고 농담했다. 벌의 스폰서는 ‘스카이 치프(Sky Chief)’ 휘발유를 만드는 텍사코였고, 쉰은 ‘하늘의 우두머리(the Chief in the sky)’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었다. 쉰은 에미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네 명의 작가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었다.

돌리라면 그 농담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 허세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발, 깊게 파인 옷깃, 몸매, 성형수술, 그리고 공들여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관해 농담을 했다. “이렇게 싸 보이려면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그러나 그런 농담이 결코 자신이 가짜라는 고백은 아니었다. 돌리의 외모는 연출된 것이었다. 하지만 돌리 자신은 연출물이 아니었다.

쉰에게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다. 그의 망토와 몸짓, 극적인 침묵, 갑자기 칠판 쪽으로 몸을 돌리는 동작은 오랫동안 세심하게 다듬어진 연극적 스타일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 연기는 그의 진짜 모습을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냈다. 세련된 무대 연출 뒤에는 한 사제가 있었다. 날마다 한 시간씩 성체 앞에서 기도하던 가톨릭 사제였다. 그의 쇼맨십도 진짜였지만, 그의 거룩함 역시 진짜였다.

어쩌면 그것이 스모키 산맥 출신의 여가수와 일리노이주 엘패소 출신의 주교가 공유했던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진정성을 격식 없음과 혼동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기억에 남는 대중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 모두 오락의 규율과 형식을 완벽히 익혔다. 어디에 서야 하는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어떻게 한마디를 전달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그 이미지가 실제 인물을 대신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공연은 그들이 실제로 믿고 있는 어떤 것을 위해 봉사했다.

그들은 또한 청중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교적 논평은 세상을 서로 싸우는 부족들로 나누는 데서 출발하고, 이어서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고 상대 진영에만 통하는 암호 같은 말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화는 적대적이다! 엘리트들은 박해자다! 청중 역시 상대편의 오류에 연루되어 있으니 맞서 싸우고, 폭로하고, 물리쳐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주장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제도들이 정통 그리스도교나 유대교 신앙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돌리와 쉰은 적대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텔레비전 화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선과 아름다움, 유머와 진리를 알아볼 능력이 있다고 여겼던 듯하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에 말을 걸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돌리의 노래는 약속이 중요하고, 배신은 상처를 남기며, 가난에도 존엄이 있고, 희생은 고통을 구원으로 바꿀 수 있으며,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닌 도덕적 세계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삶의 방식과 견해가 크게 다른 사람들을 환영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척하지는 않았다.

쉰은 더 엄격할 수도 있었다. 그는 심판, 회개, 성도덕, 그리고 현대 사회가 빠질 수 있는 전체주의적 유혹에 관해 말했다. 그는 말하자면 가장 교리적 요구가 엄격한 종교의 표지를 자신의 옷에 그대로 달고 다녔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들을 경멸한다고 느끼는 시청자는 거의 없었다. 현대 사회를 향한 그의 비판은 자신이 살아 있음에 분명히 기뻐하는 한 사람이 전하는 비판이었다. 자신의 조국에서,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산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바로 그 기쁨이 차이를 만들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돌리와 쉰에게 마지못해 짊어져야 하는 짐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자유로웠기 때문에 유머가 있었고, 모든 재능이 하느님께 받은 것이며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관대했다.

돌리의 ‘이매지네이션 라이브러리(Imagination Library)’는 수억 권의 책을 어린이들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녀는 학교, 병원, 재난 구호, 의학 연구를 지원했다. 쉰은 16년 동안 전교회를 이끌며 선교를 위해 막대한 기금을 모았고, 텔레비전 활동으로 번 수입도 내놓았다. 두 사람 모두에게서 공개적인 신앙 고백은 자연스럽게 공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인기는 공적 삶에서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에 관해 기억할 만한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은 상업적 대중문화의 한복판에서도 노골적인 그리스도교적 증언을 언제나 거부해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흔히 거부했던 것은 그리스도교적 증언인 것처럼 행세하는 어떤 것이었다. 사랑이 빠진 꾸짖는 확신, 기쁨이 빠진 도덕적 진지함이었다.

돌리와 쉰은 다른 것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신앙을 낯선 사람들을 모욕하는 수단으로 삼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신념이 있었고 야망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든 이념적으로든 억울함과 원망에 사로잡히는 길을 반복해서 거부했다. 돌리는 포터 왜고너와 격렬하게 결별한 뒤 그를 용서했고, 이후 그의 작품이 잊히지 않도록 구해냈다.

쉰은 프랜시스 스펠먼 추기경 등을 중심으로 자신을 겨냥해 벌어진 교회 내부의 음모에 대해 끝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돌리와 쉰이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그리스도교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풀턴 쉰은 그리스도교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 자신의 성소였던 주교이자 복음 선포자였다. 돌리 파튼은 가수이자 작곡가, 배우, 사업가였으며, 신앙은 그녀의 활동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규정하지는 않았다. 오늘 교회는 쉰을 복자로 선포할 것이다. 그러나 돌리우드의 경영자가 영웅적 덕행을 실천했는지 심사하는 교회 법정이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돌리가 대중의 무대에서 떠나는 바로 그 순간 쉰이 다시 그 무대로 돌아온다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두 사람은 함께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리스도교적 증언이 매력적이 되기 위해 모호해질 필요는 없다. 다만 신뢰할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성은 단지 참된 것을 말하는 데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진리가 맺어야 할 열매인 기쁨과 관대함, 용기와 자유를 삶으로 드러내는 데서도 온다.

돌리는 라인스톤 장식 아래에서 노래했다. 쉰은 로만 칼라를 하고 설교했다. 그들은 수백만 가정 안으로 들어가면서 예수님의 이름도 함께 가져갔다.

사람들은 그들이 오는 것을 기뻐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다시 오고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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