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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재일조선인 1세대 부부의 삶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이 소개되면서, 한 개인과 가족의 기억마저 특정한 집단 서사와 정치적 상징으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개된 작품 《순이와 용수》는 작가 로영남의 실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성과 양복 차림의 남성이 나란히 서 있고, 배경에는 판자집과 공장 굴뚝, 붉은 태양 등이 배치됐다.
작품 소개문은 하얀 치마저고리를 ‘순결한 민족성’, 양복을 ‘삶에 대한 의지’, 판자집과 어두운 주거지는 해방 전후 재일조선인의 고난, 공장 굴뚝은 거친 노동 속에서도 삶을 개척해온 역사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화면 상단의 붉은 태양에는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했다.
문제는 이러한 해석이 한 가족의 삶과 기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미리 정해진 역사관과 집단적 메시지에 맞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일조선인 1세대가 식민지 시기와 전후 일본 사회에서 차별과 빈곤,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시달렸다는 역사적 사실은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하나의 정치적 구호나 특정 조직의 역사관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했고, 누군가는 자녀 교육과 가족의 정착을 위해 일본 사회와 끊임없이 부딪쳤다. 북한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고 대한민국과 관계를 맺은 사람도 있었으며, 어느 쪽 정치체제와도 거리를 둔 채 살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품 설명은 ‘민족성’, ‘고난’, ‘투쟁’, ‘희망’이라는 상징을 일관되게 연결하며 재일동포 역사를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특히 ‘붉은 태양’에 미래와 희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북한 및 조총련 계열 매체에서 반복돼온 정치적 상징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의 가족사가 작품에 담기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특정한 이념적 역사 서사의 증거물처럼 재구성하는 순간 예술은 기억의 기록을 넘어 정치적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
재일조선인 1세대의 삶에서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어느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상징’이 아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을 지키고 생계를 이어가며 살아남았던 개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인간적 존엄이다.
그들의 가난도, 노동도, 차별도, 희망도 어느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순이와 용수》가 정말 선대 재일동포들의 삶을 기억하려는 작품이라면, 이제 필요한 것은 정해진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원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예술은 역사를 기억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하나의 이념으로만 설명하려는 순간, 작품 속 주인공들의 진짜 삶은 오히려 지워질 수 있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