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17년 전 수사가 다시 정치권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한동훈 의원의 발언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한 의원은 자신의 주장이 허위라면 사자명예훼손으로 자신을 고발하라고 맞서고 있다. 정치적 언사로만 보면 또 하나의 거친 여야 공방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논쟁에는 그것으로 끝내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다. 그것도 진영이 편집한 진실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알고 싶다.
이번 논쟁의 출발점이 된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는 분명히 확인된 사실과 끝내 사법적으로 확정되지 못한 의혹이 함께 존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부인 권양숙 여사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측의 돈을 받아 사용했다는 취지로 직접 밝혔다. 권 여사 역시 검찰 조사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채무 변제 등에 사용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당시 보도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노 전 대통령에게 제기됐던 모든 뇌물 혐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같은 해 5월 투신자살했고, 검찰은 이후 관련 의혹을 내사 종결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 본인의 형사책임에 대해서는 법원의 유죄 또는 무죄라는 최종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둘러싸고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충돌해 왔다. 한쪽에서는 정치보복과 무리한 수사가 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실제 금품수수 의혹과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들이 정치적 서사 속에서 지워졌다고 주장한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도 훗날 회고록을 통해 검찰이 유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무현재단은 이를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하며 피아제 시계를 비롯한 여러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어느 한쪽의 주장을 오늘 우리가 법원의 확정판결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의 대응은 또다시 “사과하라”와 “고발하라” 사이에서 맴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치적 수사만 반복할 이유가 없다. 고발할 사안이라고 판단한다면 고발하라.
한동훈 의원의 주장이 허위이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한다면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반대로 고발하지 않는다면 왜 하지 않는지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사과하라”, “패륜이다”, “모욕이다”라는 정치적 비난만으로는 17년 묵은 사실관계가 한 치도 밝혀지지 않는다.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증언과 회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내부 관계와 갈등에 대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증언 역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해서는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증언이라고 무조건 사실인 것도 아니고, 그를 옹호하는 증언이라고 자동으로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는 충성심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기록과 증거로 써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다. 그래서 더욱 냉정해야 한다. 고인이라는 이유로 검증 가능한 사실까지 금기의 영역에 넣어서도 안 되고, 반대로 고인이 반론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확정된 사실처럼 말해서도 안 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신화도 악마화도 아니다. 사실이다.
국민은 어느 정치인의 명령에 따라 기억하지 않는다. 국민에게는 자신의 현대사를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 17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당시의 수사기록과 관계자 증언, 공개된 자료와 이후 확인된 사실들을 가능한 범위에서 다시 국민 앞에 펼쳐놓아야 한다.
그래서 말한다. 한동훈의 발언이 허위라고 확신한다면 고발하라.
국민은 진영이 만들어 준 노무현이 아니라, 사실 속의 노무현을 알 권리가 있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