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한 주례 교리교육에서 현재 공의회 문헌 가운데 비교적 논쟁이 많았던 「사목헌장」을 다루고 계신다. 비판자들은 가톨릭교회가 현대성에 대한 이전의 단죄를 수정하면서 세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목헌장」은 19세기의 일부 가르침을 수정한다. 그 정도가 상당했기에 요제프 라칭거는 유명하게도 이 문헌을 “비오 9세의 『오류 목록』에 대한 수정이며, 일종의 반(反)『오류 목록』”이라고 말한 바 있다.
1864년 회칙 「콴타 쿠라」(Quanta Cura)에 첨부된 『오류 목록』은 자유주의적 현대성과 교회 사이에 거리를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일부에게 이 문헌은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존 헨리 뉴먼은 『오류 목록』이 “익명의 저자가 저지른 몇몇 오류들을 요약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먼은 『오류 목록』이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현대 민주국가의 충실한 시민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사목헌장」을 “반(反)『오류 목록』”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이전 전통의 일부 요소 사이에 존재하는 비연속성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이는 또한 공의회에서 일어났던 일종의 “은폐”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곧, 위대한 공의회와 이전의 통상 교도권 가르침 사이에서 때때로 발견되는 비연속성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그러한 비연속성에는 신학적으로 큰 깊이가 없었다. 뉴먼이 분명히 보았듯이, 『오류 목록』은 여러 문헌에서 뽑아낸 문장들을 뒤섞어 놓은 것이었으며, 그것도 전적으로 문맥을 벗어난 상태로 인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중대한 교리적 가르침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오류 목록』이 자유주의적 현대성의 화려한 유혹으로부터 교회를 떼어 놓으려 했다면, 「사목헌장」은 현대 사회 안에서 발견되는 진리와 정의를 향한 추구와 교회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완강한 적대의 수사를 버리고, 이 문헌은 협력과 대화의 어휘로 특징지어진다. 형제애에 관한 그 언어는 공의회가 강조한 유비적 사고에 의해 뒷받침되며, 동시에 제1의 유비항인 가톨릭과 제2차적 유비항들 사이의 암묵적 구별에 기초한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계시의 충만함을 지니고 있다. 다른 이들은 각기 다른 정도와 강도로 이 충만함에 “참여”한다.
이 접근법을 사용함으로써 공의회는 가톨릭과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들, 다른 종교들—특히 유대교—그리고 사회 전체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는 이들조차도 형식적으로 그리고 내재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은 진리와 정의에 대한 갈망을 드러냄으로써 가톨릭 안에서 완전하게 발견되는 “완전성들”에 참여한다.
공의회의 저명한 전문가였던 이브 콩가르가 지적했듯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많지 않지만, 그의 사상은 문헌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나는 콩가르가 공의회 가르침을 관통하는 유비적이고 참여적인 정신을 가리킨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그리고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던 냉전은 공의회 교부들로 하여금 공의회의 강조점이 인간을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로 묶는 것에 놓여야 한다고 판단하게 했다. 「사목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 인격의 존엄성과 인간 공동체, 그리고 인간 활동의 깊은 의미에 관하여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은 교회와 세계의 관계의 토대를 이루며, 그들 사이의 대화를 위한 근거를 제공한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일은 많은 제도와 개인들의 목표였으며, 가톨릭교회는 그들 모두와 대화할 수 있었다.
그 한 예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산주의를 다룬 방식이다. 약 400명의 주교들이 신학위원회에 무신론과 공산주의를 단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제안은 바오로 6세와 논의되었는데,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단죄는] 반사목적이며 정치적으로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신론자이든 공산주의자이든, 교회가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콩가르가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듯이, “교황과 공의회는 사람들을 돌보고 치유하려는 사목적 태도를 선택했다.”
최근의 교리교육에서 레오 교황은 「사목헌장」과 『오류 목록』 사이의 어떠한 비연속성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친히 공유하신 우리의 공통된 인간성을 강조한다. 이 공통의 인간성은 이 문헌의 유명한 첫 문장에 각인되어 있다.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사목헌장」은 교회와 주변 문화의 관계를 새롭게 그려 내고자 했다. 그것은 가톨릭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교회 밖의 모든 것을 오류로 가득 찬 것으로 단죄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다른 배경과 신념을 지닌 이들을 포함해 남녀 모든 인간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연결 고리들을 탐구하는 문제였다. 따라서 인간 존엄성의 기초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레오 교황의 최근 회칙 「위대한 인류애」가 「사목헌장」을 중요한 선행 문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레오 교황은 처음부터 「사목헌장」에 제기되어 온 대표적인 비판 하나를 무력화한다. 곧 이 문헌이 인간 본성과 문화 전반에 대해 지나치게 순진한 낙관주의를 갖고 있다는 비판이다. 젊은 시절의 요제프 라칭거는 이 문헌이 인간의 진보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보았으며, 어느 순간 그 일부를 “노골적으로 펠라기우스주의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라칭거는 「사목헌장」에 대해 언제나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2013년 교황직에서 물러나기 불과 2주 전, 그는 이 문헌을 두 차례나 “위대한” 문헌이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베네딕토 16세는 이 문헌의 가르침이 지닌 지대한 중요성을 확고하게 믿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교리교육에서 레오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가 가장 즐겨 인용했던 구절 가운데 하나를 되풀이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인간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시고 그의 지고한 소명을 밝혀 주신다.” 전통적인 비판을 알고 있는 레오 교황은 「사목헌장」이 권고하는 것은 “순진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새로워진 충실성”이라고 강조한다.
레오 교황은 또한 또 다른 논쟁적 구절을 인용한다. 곧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할 의무”를 지닌다는 구절이다. 공의회 직후 시기에는 “시대의 징표”라는 표현이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문화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그에 맞추어 적절한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었다. 어떤 해석들에서는 당시의 주변 문화가 교회 가르침을 이끄는 규범인 것처럼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표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해석은 중대한 오해임이 드러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는 동안 문헌 초안들은 참석한 저명한 개신교와 정교회 옵서버들에게 배포되었다. 그들의 의견이 요청되었고, 이후 각각의 문헌 작성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 옵서버들 가운데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지명한 대표였던 스위스 개혁교회 신학자 루카스 비셔가 있었다. 비셔는 「사목헌장」 초기 초안들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시대의 징표”라는 표현을 비판했다.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는 것이 과연 교회의 임무인가? 오히려 비셔는 복음에 비추어 시대를 비판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셔의 지적을 받아들여 공의회는 최종 문헌에서 ‘signa uploadorum’, 곧 “시대의 징표”라는 표현을 단 한 번만 사용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경우에도 ‘perscrutandi’, 곧 “면밀히 살펴보다”, “탐구하다”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주장들을 복음의 빛 아래에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러한 수정은 저명한 신학자 앙리 드 뤼박을 기쁘게 했을 것이다. 그의 공의회 수첩에는 가톨릭교회의 “세상에 대한 개방”과 비신자들과 공동 행동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리스도교의 전례와 교리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레오 교황의 강론은 그리스도교 전통이 이처럼 주변화되는 것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목헌장」의 근본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며, 참된 인간의 번영에 기여하고,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돌봄으로써 현대 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이다.
「사목헌장」과 함께 레오 교황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모든 인간이 지닌 고유한 존엄성을 확고하게 강조한다. 그는 공의회 당시 일부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이 문헌에 대해 가졌던 유보적 태도 (오늘날에도 때때로 제기되는 그러한 유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레오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의 노선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오 교황에게 「사목헌장」은 풍성한 신학적 사유를 담고 있으며, 그러한 까닭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와 세상 모두에게 가르쳐 줄 것이 많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