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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셸 박 스틸 주한미국대사 지명자 - 인터넷 캡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국대사로 지명한 미셸 박 스틸 전 연방하원의원의 인생 이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다.
사회주의 북한을 탈출한 부모 세대가 김씨 왕조 아래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다시 일어섰고, 그 딸이 이제 대한민국을 상대하는 미국의 외교 대표로 지명됐다. 이보다 더 선명하게 자유와 전체주의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다.
이번 지명은 단순한 외교 인사가 아니다. 북중러 전체주의 진영과 그들과 보조를 맞추려는 세력에 보내는 분명한 경고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체제는 결코 번영을 만들 수 없으며, 사람을 살리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자유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키는 상징적 사건이다. 북한에서 빼앗긴 삶이 미국에서 회복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김씨 왕조의 허구와 잔혹성은 충분히 고발된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메시지가 정작 한국에서는 제대로 읽히고 있느냐는 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북한인권 문제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 의제로 다루고 있는가. 오히려 그 반대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 주민의 참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기보다, ‘평화공존’이라는 기만적 언어 뒤로 북한인권의 절박성을 밀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인권은 선택 가능한 주변 의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다. 북한 주민의 자유와 생명, 존엄을 외면하면서 한반도의 미래를 말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인권을 지운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침묵의 강요일 뿐이며, 자유를 뺀 공존은 공존이 아니라 굴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북한인권이라는 말 자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을 바꾸고, 우선순위를 흐리고, 정책의 무게중심을 슬쩍 옮기면서도 겉으로는 균형과 실용을 말한다. 그러나 국민은 안다. 무엇을 강하게 말하고 무엇을 조용히 덮는가를 보면, 그 세력의 진짜 생각이 어디를 향하는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북한인권을 애써 지우려는 태도는 결코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가치의 후퇴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북중러 전체주의에 대한 사실상의 유화와 다를 바 없다.
특히 대한민국 안에서조차 북한 정권의 반인권성과 전체주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 반미·반자유의 낡은 이념에 기대어 현실을 호도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들은 겉으로는 평화와 민생, 대화와 화해를 말하지만, 정작 가장 처절한 고통 속에 놓인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 앞에서는 놀라울 만큼 침묵한다. 침묵은 우연이 아니다. 외면 역시 실수만은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보는 인식의 방향, 곧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정치적 고백이다.
미셸 박 스틸의 지명은 바로 그 점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북한 체제를 피해 탈출한 가족의 서사가 자유민주 진영의 외교적 상징으로 자리 잡는 동안, 대한민국 내부의 일부 세력은 오히려 북한인권의 언어를 줄이고 지우는 길로 가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주민의 눈물과 희생 위에 세워진 인권의 호소를 외면하면서 어떻게 자유를 말할 수 있겠는가.
탈북민 1세대의 딸이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된 현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자유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전체주의를 향한 침묵과 유화의 길에 머물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더 이상 모호함은 용납될 수 없다.
북한인권을 지우는 세력의 속내가 무엇인지, 국민은 이제 더욱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자유를 말하면서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리고 그 위선은 결국 북중러 전체주의 세력과의 정신적 동조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