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기억될 만한 사람인가? 찰스 다윈과 칼 마르크스는 그리스도교적 사유를 그토록 파괴적으로 훼손했음에도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가장 심오한 가톨릭 사상가이자 당대의 거인이었던 오레스테스 브라운슨(1803–1876)은 여전히 무명의 어둠 속에 머물러 있다.
브라운슨의 전기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아서 M. 슐레진저 주니어는 이렇게 단언했다. “사회에 대한 그의 통찰은, 동시대 그 어떤 미국인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만큼 심오했다.”
회심자인 브라운슨은 인간의 평등을 위해 분연히 외치고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질책한 개혁가였지만, 동시대의 다른 개혁가들과는 달리,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미래의 문제를 내다볼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랐다. “유럽 자유주의자들의 중대한 오류는 …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 종교적인 것이다.”
그는 사회 속의 인간과, 그 사회 내의 권위 및 정부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했다. 사회는 “인간이 동족을 통해 창조주와 교감하는 관계로서, … 인간의 삶과 진보, 그리고 존재의 완성을 위한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조건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며, 그 밖의 다른 곳에서는 태어나거나 살 수 없다. 이는 인간 본성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 사회는 “영원히 경배받으실 삼위일체의 신성한 사회에서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지닌다.”
무로부터의 창조, 하느님 아들의 강생,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브라운슨이 문학을 쓰든 과학을 쓰든 정치에 관해 쓰든, 언제나 그에게 현존하는 실재였다. 그 시대에도, 또 우리 시대에도, 이처럼 신적 실재와 세속적 삶을 통합하는 데 능숙한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오레스테스 브라운슨은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용기 있게 살아가는 법을 우리에게 많이 가르쳐 줄 수 있다.
10여 년이 지나면, 우리는 미국 헌법 제정 250주년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은 브라운슨의 유산을 되살리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의 신학 관점을 바탕으로 미국 헌법을 연구하는 순간, 다른 어떤 미국인 집단보다도 종교적 배경 덕분에 미국 헌법의 진정한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미국 헌법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미국 가톨릭 신자가 추구해야 할 과제여야 한다.
우리의 헌법적 정부 형태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 애쓰는 좌파 세력과, 비대해진 정부, 가족의 붕괴, 그리고 ‘우리 국민’이 사적 이익 집단으로 대체되는 현실에 낙담한 우파 세력으로부터 큰 압박을 받고 있다.
브라운슨을 미국 대중에게 다시 알리려는 노력은 2024년 6월 워싱턴 D.C.의 캐피톨 방문자 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 「오레스테스 브라운슨과 미국 입헌주의의 미래」를 통해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4월 16일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리는 「오레스테스 브라운슨과 미국의 사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1953년 이후 브라운슨의 사상에만 전적으로 헌정된 첫 번째 학술대회이다.
브라운슨의 명성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때때로 되살아났다가, 다시 망각 속으로 떨어지곤 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오레스테스 브라운슨 연구 재단이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그의 사상에 관한 세미나와 워크숍을 개최하고, 연례 에세이 공모전을 운영하며, 그의 저작들을 온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연구를 증진하기 위해, 이 재단은 브라운슨의 저작들뿐 아니라 그에 관해 쓰인 많은 글들도 검색 가능한 형태로 디지털화할 예정이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러하듯, 오레스테스 브라운슨은 미국 건국에 대하여 그러한 인물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