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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김일성 생일을 기념하는 중앙대회를 열고 “대를 이어 누리는 수령복”을 찬양했다는 소식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적 퇴행의 한 장면이다.
일본에서 살아가며 일본 사회의 제도와 안전, 자유를 누리는 단체가 정작 공개석상에서는 북한 3대 세습 독재를 미화하고,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을 집단적으로 다짐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기괴하다.
이번 대회에서 쏟아진 표현들은 하나같이 전체주의 우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일성을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수령”이라고 치켜세우고, 김정은을 다시 “높이 모시게 된 크나큰 환희”라고 표현하며, 이를 두고 “대를 이어 누리는 수령복”이라고 포장한 대목은 정상적인 정치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현대 시민사회가 경계해야 할 개인숭배, 세습독재 미화, 사상적 예속의 언어일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구호가 단순한 향수나 상징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총련은 여전히 북한 체제를 “승리와 영광”, “전면적 국가부흥”, “새 변혁시대”의 주체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아는 현실은 정반대다.
북한은 주민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고, 정보 접근을 차단하며, 세습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포정치와 사상통제를 지속해온 체제다. 그런 체제를 향해 해외에서 “유일적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겠다고 외치는 것은 단순한 친북 성향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발상이다.
특히 일본 사회가 이런 문제를 더 이상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직이 일본의 자유를 이용해 북한 독재를 찬양하고, 주민을 억압하는 세습체제의 선전 확성기 역할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방치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자유는 자유를 파괴하려는 선전까지 무제한으로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총련이 계속해서 북한 정권의 정치적 대변자처럼 행동한다면, 일본 사회 역시 그 실체를 보다 엄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번 행사에서 반복된 “사랑과 은덕”, “어버이수령”, “태양의 역사” 같은 표현도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는 정치적 판단과 현실인식을 마비시키는 종교적 숭배의 언어다. 주민들의 굶주림과 인권 유린, 탈북민들의 참혹한 증언, 정치범수용소와 공개처형의 기억은 외면한 채, 오직 김씨 일가의 신격화만을 되풀이하는 집단이 과연 누구를 위한 조직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재일동포 사회를 위한다면서 정작 동포들을 시대착오적 우상화와 맹목적 충성의 틀 안에 붙들어 두려는 것 아닌가.
총련의 이런 행태는 재일동포 전체의 명예와도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다수의 재일동포들은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실히 살아가며, 보다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총련은 이들의 다양한 현실과 미래를 대변하기는커녕, 낡은 북조선 선전문구를 되풀이하며 집단 전체를 과거의 유령 속에 붙들어 매고 있다.
동포사회의 발전을 말하려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찬양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 교육과 생존, 그리고 미래세대의 기회를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결국 이번 “김일성 탄생 114돌 경축대회”는 총련이 아직도 스스로를 해외동포단체가 아니라 북한 세습독재의 외곽 충성조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땅에서 벌어진 이 낯뜨거운 충성 행사는, 총련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채 전체주의의 언어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김씨 왕조를 향한 충성은 결코 “수령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를 잃은 정신의 표지이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부끄러운 퇴행이다. 총련이 진정 재일동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독재 우상화의 제례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 충성부터 끊어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동포사회를 살리고, 일본 사회 안에서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