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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38] 교황과 대통령의 충돌

2026-05-14 06:55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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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R. 리노 R. R. Reno is editor of First Things. 편집장


지난 4월, 교황 성하와 미국 대통령은 설전을 벌였다. 직접적인 계기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레오 교황의 비판이었다. 트럼프가 미국의 막대한 군사력을 사용해 페르시아 문명을 말살하겠다는 식의 전멸적 위협을 내놓으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하나의 문명이 죽게 될 것이다.” 이런 발언과 그 밖의 거친 언사는 피트 헤그세스가 자주 보여 온 람보식 허풍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레오 교황은 트럼프의 위협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교황 성하의 판단은 분명 옳았다. 나 역시 당시 「전시 수사의 윤리」에서 그렇게 쓴 바 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모든 이에게 기도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또한 소통할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국회의원들과, 당국자들과 소통하면서,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고 평화를 원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레오 교황은 또한 SNS에 날카로운 문장을 게시했다. “이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전쟁을 거부하시며, 그 누구도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물리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하여도 나는 듣지 않으리라. 너희 손은 피로 가득하다’(이사 1,25).”

백악관은 레오 교황의 이러한 발언들을 정치적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듯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모드로 들어가, 트루스 소셜에 레오 교황을 폄하하는 발언들을 올렸다. “범죄에 약하고, 외교정책에는 형편없다”는 식이었다. 트럼프는 또한 자신을 병자를 치유하는 예수와 비슷한 인물로 묘사한 기괴한 AI 생성 이미지를 게시했다. 소동이 뒤따랐다. 레오 교황은 자신이 “트럼프 행정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나는 트럼프의 발언들 가운데 일부는 값싸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보고, 또 다른 일부는 경멸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과장과 중상은 언제나 그의 수사적 무기의 일부였고, 그것이 그의 정치적 성공에 불을 붙여 왔다. 그러므로 나는 교황 성하에 대한 그의 악의적 발언에 낙담한다고 해 두겠다. 그러나 놀라지는 않는다. 여기서 내가 “분노한다”고 하지 않고 “낙담한다”고 말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분노는 트럼프가 즐겨 만들어 내는 WWE식 분위기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이 가톨릭교회를 정치적 반대자로 지목하는 것은 옳다. 내가 여러 차례 쓴 바 있듯이, 국제적 제도로서의 교회는 세계화를 추진하고 전후 개방사회 합의의 승리를 추구하는 여러 세력과 긴밀히 연대해 왔다. 반면 트럼프와 그가 대표하는 포퓰리즘은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나의 영적 지도자가 평화를 위해 강하고 흔들림 없는 옹호자가 되기를 바란다. 더구나 트럼프가 전쟁을 선택한 것을 현명하지 못하며 어쩌면 부정의하다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다. 나는 앞선 칼럼 「정전론과 격렬한 분노」에서 나의 우려를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평화의 군왕으로 말하는 포괄적 주장이나, 그분이 누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지에 관한 단정적 진술보다, 우리 시대에는 우리가 현재의 상황 속에서 어떤 종류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을 위해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 현재의 상황은 바티칸의 기본 입장을 점점 더 설득력 없게 만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기구를 옹호한 이들은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초국가적 세계 통치의 비전을 강력히 옹호하게 되었고, 그것은 전쟁을 외교정책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세계적 “공권력”의 발전을 지지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이 열망을 되풀이하며 “참된 세계 정치 권위”를 요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찬가지였다.

이 평화 비전의 문제는, 그것을 현실화하려는 가장 지속적인 시도가 실패했다는 데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지도자들은 세계 협력을 위한 신뢰할 만한 초국가적 틀을 제공할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크림반도를 장악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을 막지 못했다. 또한 중동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현재의 분쟁을 촉발한 이란의 대리 민병대 네트워크도 억제하지 못했다.

더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과급시켰고,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차를 키웠다. 그의 2020년 회칙 『모든 형제들』은 세계화된 경제를 비판했다. 그럼에도 그 회칙은 이번에는 연대와 주변화된 이들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조직된 새로운 국제주의를 요청했다.

다시 말해, 높은 이상은 고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현실적일 때에는 쉽게 무책임한 것이 된다. 프란치스코 재위 기간 동안 바티칸은 그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기대되는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억만장자들을 로마로 초청했다.

한편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적 권리 박탈에 대한 실제 저항, 그리고 국제체제를 유지하는 비용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반발은 포퓰리즘 운동들 안에서 일어났다. 트럼프의 선거 승리는 그 대표적 사례이지만, 결코 그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은 탈냉전 국제주의의 실패와 국민국가에 기반한 포퓰리즘의 부상을 예견했어야 했다. 교황 레오 13세는 그의 유명한 회칙 『새로운 사태』, 곧 『레룸 노바룸』(1891)에서, 산업혁명 동안 서구를 재편하던 새로운 경제적 힘들이 오직 연대의 거대한 동력들, 곧 가정과 국가와 교회의 균형 잡힌 힘에 의해서만 억제될 수 있음을 보았다.

서구 국가들의 국민들은 레오 13세의 통찰과 비슷한 무언가를 더듬어 찾아가고 있다. 포퓰리즘은 국민적 연대를 새롭게 하려 한다. 그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판했던 세계 자본주의의 과잉에 맞서는 대항력을 제공한다. 오늘날의 포퓰리즘은 혼란스러운 일이며, 그 자체의 과잉을 안고 있다. 또한 지정학적 긴장을 되살리고 있으며, 이란 분쟁이 보여 주듯 중대한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

레오 교황의 아프리카 국가 방문은 지켜보기에 흥미로웠다. 부패 비판이든, 경제 정의에 대한 요청이든, 젊은이들이 조국에 머물도록 권고하는 말이든, 그의 메시지는 연대를 격려하고 국가 역량을 구축하여 대륙의 나라들이 번영을 누리고 내부 분쟁을 막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심이 서구 국가들로 향하면, 바티칸은 비슷한 문제와 필요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레오 교황은 가톨릭교회가 우리 시대의 정치 논쟁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모든 신호를 보내 왔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냉전이 끝난 뒤 세계는 심오한 방식으로 재편되었고, 그 변화들은 이제 새로운 도전들을 촉발하고 있으며, 그 도전들은 다시 새롭고 혼란스러운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이주, 강대국 간 충돌, 민족주의, 경제 정의, 이러한 문제들과 그 밖의 문제들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도덕적 분석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레오 교황은 이란 분쟁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핵 확산의 위험에 대해서도 다루어야 한다. 그것을 막기 위한 정의로운 수단은 무엇인가? 또한 그는 제국을 방어하기 위한 전쟁 수행의 정의에 관한 어려운 질문들도 숙고해야 한다.

“제국”이라는 말은 평판이 좋지 않다. 그러나 이 용어는 강대국의 영향권을 느슨하게 묘사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 영향권 안에서 강대국의 패권은 평화의 조건들을 보존한다. 평화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전론이, 바로 그 지배에서 비롯되는 평화의 조건들을 보호하기 위해 패권국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것은 까다로운 질문이며, 이란 분쟁뿐 아니라 1945년 이후 미국의 전쟁 수행과도 관련된 질문이다.

나는 국제기구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앞으로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강대국 경쟁의 세계에서 어떤 종류의 평화가 성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기대하고 달성하며 보존할 수 있는지를 분별하기 위해 교회의 도덕적 지혜를 필요로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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