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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55] 「위대한 인류애」에서 레오 교황은 인간 인격을 옹호한다

2026-05-31 06:03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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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A. 시리코 Robert A. Sirico is co-founder of the Acton Institute. 액턴 연구소 공동 설립자


“인간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 시편 8,4

교황 레오 14세의 첫 회칙 「위대한 인류애」는 이미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중대한 개입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설명은 그 자체로는 옳다. 교황은 알고리즘 권력, 자동화, 노동의 대체, 감시, 그리고 소수의 기업 및 정치 행위자들의 손에 기술적 영향력이 점점 더 집중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회칙의 더 깊은 주제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인격,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의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인공지능을 둘러싼 모든 논쟁의 밑바탕에 놓인 질문이다. 비록 명시적으로 제기되지 않을 때에도 그렇다. 우리는 단지 고도로 정교한 생물학적 기계, 곧 더 발전된 체계에 의해 복제되기를 기다리는 충동과 선호, 신경 활동의 묶음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는 도덕적 행위 능력, 영적 깊이, 창조성, 양심, 그리고 어떤 알고리즘도 모방할 수 없는 초월적 운명을 지닌 피조물인가?

그 대답은 중요하다. 모든 기술은 결국 그것을 만들어 낸 문명의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도구는 결코 단순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도구 안에는 인간 본성, 인간의 의도, 인간의 목적에 관한 전제가 내장되어 있다.

레오 교황은 이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위대한 인류애」 전반에서 그는 경제주의와 과학주의 모두를 경고한다. 곧 인간을 경제적 생산성의 단위로 환원하거나, 전적으로 기술적 관리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과정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경계하는 것이다.

교황은 인간 존엄이 효율성이나 시장에서의 유용성, 또는 계산 능력의 우월성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간 존엄은 인간 인격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이로써 교황은 기술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기술 개발의 상당 부분과 그것을 낳는 문화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트랜스휴머니즘적 세계관에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에 대한 축소된 이해에서 출발한다. 의식이 정보 처리로 환원될 수 있다면, 인간의 한계는 해결을 기다리는 공학적 문제가 된다. 죽음은 기술적 결함이 된다. 의존성은 약점이 된다. 몸 자체는 업그레이드를 기다리는 낡은 하드웨어가 된다.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기술의 목적은 더 이상 인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열망은 오늘날 놀랄 만큼 많은 현대 기술 담론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인공지능이 곧 계산 능력뿐 아니라 창의성, 판단력, 감성 지능, 동반자 관계, 심지어 도덕적 추론에 있어서도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는 약속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 함의는 분명하다. 인간성 자체가 지능의 진화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중간 단계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러니는 놓치기 어렵다. 인간 생명과 정체성의 의미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잃어 가는 문명이 이제 자기 형상대로 기계를 만들겠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레오 교황의 회칙은 이러한 인간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교황은 인간이 효율성, 생산성, 또는 측정 가능한 산출의 범주만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자기 안에 닫힌 물질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전적 그리스도교 전통이 초월성이라 부르는 것을 지니고 있다.

곧 진리, 아름다움, 선, 사랑, 희생,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 자신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인간성의 의미는 바로 우리의 우연성, 의존성, 취약성 안에서 드러난다.

이 이해에 따르면, 인간 인격은 기계에 의해 추월되지 않는다. 인간 인격은 계산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통찰은 반과학적이지 않다. 또한 향수에 젖은 것도 아니다. 레오 교황은 급격한 기술 변화의 시기에 자주 동반되었던 ‘동굴’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은 유혹을 조심스럽게 피한다. 그는 혁신으로부터 물러나자고 요청하지 않는다. 기술 이전의 과거를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위대한 인류애」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진보 자체를 악마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황은 기업가적 주도성을 가치 있는 소명으로 명시적으로 찬양한다. 그는 혁신이 고통을 덜어 주었고, 인간 가능성을 확장했으며, 이전 세대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빈곤과 고립의 상태에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끌어올렸음을 인정한다. 교회가 우려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도덕적·인간학적 전제라고 그는 분명히 밝힌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공적 논쟁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똑같이 부적절한 두 극단 사이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기술 유토피아주의자들이 서 있다. 그들에게 계산 능력의 모든 증가는 곧 도덕적 진보를 의미한다. 인간의 문제는 공학적 문제가 된다. 정치는 체계 관리가 된다. 마찰, 모호성, 의존성, 한계는 인간 조건의 영구적 특징이라기보다, 충분히 발전된 기술을 통해 수정되기를 기다리는 버그처럼 여겨진다.

다른 한쪽에는 새로운 반동주의자들이 서 있다. 이들은 현대 기술 자체를 문명적 실수로 간주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들의 본능은 철수이다. 소외와 관료제, 기술적 매개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상상되는 더 이른 시대를 낭만적으로 그리워하는 것이다.

두 관점은 모두 문제를 오해한다. 두 관점 모두 인간 인격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이 직면한 도전은 우리가 강력한 기술을 보유하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보유하고 있다. 진짜 질문은 우리의 기술이 인간 번영에 대한 일관된 비전에 계속 종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자유롭고 진지한 문명은 혁신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인간 존엄에 대한 견고한 이해에 뿌리내린 다원주의를 필요로 한다.

레오 교황의 회칙은 바로 이 가능성을 가리킨다. 그가 가족, 교회, 학교, 자발적 결사체, 지역 공동체, 기업가적 주도성과 같은 중간 공동체들을 반복해서 옹호하는 것은, 문명이 중앙집권적 규제나 관료적·기술적 관리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해를 반영한다. 문명은 문화에 의해 세워진다. 그리고 문화는 궁극적으로 인간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시대의 결정적 질문은 단순히 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이다. 인간의 목적, 곧 텔로스는 무엇인가?

인간이 단지 고도화된 계산 유기체에 불과하다면, 점점 더 정교해지는 인공 체계는 자연스럽게 지능, 생산성, 사회적 권위의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런 조건 아래에서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의 기준에 의해 언제나 낡고 쓸모없는 존재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인격이 초월성에 근거한 환원될 수 없는 존엄을 지닌다면, 곧 인간이 단지 소비와 효율성을 향해서가 아니라 진리, 아름다움, 덕, 예배, 사랑을 향해 질서 지어진 존재라면, 아무리 강력한 기계도 인간을 대체하거나 능가할 수 없다.

기계는 속도, 기억, 예측, 계산에서 우리를 능가할 수 있다. 기계는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우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는 회개할 수 없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관상할 수 없다. 사랑할 수 없다. 하느님을 찾을 수 없다.

이를 잊어버린 문명은 기술적으로는 장엄해질지 모르나, 영적으로는 고갈될 것이다. 이를 기억하는 문명은 아직 인간에게 합당한 기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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