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이 오가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다. 포성이 울리고 피가 흐르는 전장만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포퓰리즘’이라는 달콤한 포장으로 우리의 삶 한복판에 전쟁이 닥쳐온다.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전쟁은 바로 그런 전쟁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집요하고, 당장은 따뜻해 보이지만 결국 공동체의 뿌리를 갉아먹는 전쟁이다.
정년연장 문제, 대중교통 무임승차 연령 상향 논란, 각종 복지 확대 요구는 단순한 정책 논쟁이 아니다. 이것은 누가 부담하고, 누가 혜택을 받으며, 어떤 세대가 어떤 책임을 짊어질 것인가에 관한 공동체적 전쟁이다.
한쪽에서는 권리를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감당해야 할 재정을 말한다. 한 세대는 삶의 안정을 요구하고, 다른 세대는 미래의 부담을 걱정한다. 결국 문제는 돈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어떤 의식을 갖고 공동체를 바라보느냐에 있다.
복지는 필요하다. 약자를 보호하고, 공동체의 최소한의 안전망을 유지하는 일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복지가 책임 없는 권리의 언어로만 장식될 때, 그것은 더 이상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 세대에게 청구서를 떠넘기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된다.
오늘의 박수를 위해 내일의 파산을 외면하는 정책은 선의가 아니라 무책임이다. 복지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허무는 것은, 총칼 없는 전쟁과 다르지 않다.
특히 심각한 것은 의무를 외면한 채 권리만을 주장하는 의식이다. 공동체는 권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권리와 의무가 함께 설 때만 공동체는 건강하게 존속할 수 있다. 세금을 내는 사람, 일하는 사람, 다음 세대를 키우는 사람,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의 책임 위에 권리도 존재한다.
그런데 의무의 언어는 사라지고 권리의 구호만 커질 때, 사회는 필연적으로 갈등의 늪에 빠진다. 누군가는 계속 부담하고, 누군가는 계속 요구하는 구조가 굳어지면 공동체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년연장도 마찬가지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동 기회를 늘리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청년 세대의 진입 기회를 막고, 기업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키우며,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된다면 그것은 해법이 아니라 또 다른 전선이다.
대중교통 연령 상향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재정은 한정되어 있고, 혜택은 누군가의 부담 위에 세워진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좋은 말만 앞세워 모두에게 다 줄 수 있다는 식의 정치는 결국 모두를 속이는 일이다.
포퓰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는 데 있다. 마치 권리는 공짜로 주어지고, 복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며, 국가 재정은 끝없이 샘솟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오늘의 무책임한 약속은 내일의 세금으로 돌아오고, 미래 세대의 기회 박탈로 되돌아온다. 결국 포퓰리즘은 약자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더 큰 약자를 만들어낸다. 청년과 미래 세대가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총칼도, 포퓰리즘도 결국 인간의 의식에서 시작된다. 어떤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결말은 달라진다. 책임 있는 자유를 선택할 것인가, 책임 없는 권리만 외칠 것인가. 지속 가능한 복지를 선택할 것인가, 표를 위한 선심성 약속에 끌려갈 것인가.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할 것인가, 당장의 이익만 움켜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대한민국의 내일을 결정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복지라는 이름의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총칼이 아니라 의식이 바로 서야 한다. 의무 없는 권리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책임 없는 복지는 미래를 파산시킨다. 이제는 달콤한 포퓰리즘의 언어를 넘어, 지속 가능한 국가와 책임 있는 시민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