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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82] JD 밴스가 교회 안에서 발견한 것

2026-06-27 06:54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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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배런 Robert Barron is bishop of the Diocese of Winona-Rochester and the founder of Word on Fire Catholic Ministries. 위노나-로체스터 교구 교구장


성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 제6권에서 밀라노 거리에서 만취한 한 남자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황제의 연설을 참관하기 위해 가마에 실려 가고 있었다. 자신의 출세욕이 그를 이 높은 자리까지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는 그 가련한 술주정뱅이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이 그를 덮쳤다. 내일 아침이면 저 사람은 술에서 깨어나겠지만, 나는 여전히 세속적 야망에 취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이 일화는 아우구스티노의 영적 여정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JD 밴스의 영적 자서전을 읽는 동안 이 장면을 자주 떠올렸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아우구스티노적인 흐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아프리카의 교부처럼, JD 밴스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 출신의 사람이다. 그의 자서전 첫 권인 『힐빌리의 노래』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그의 어린 시절은 경제적 불안정, 수많은 가족 기능의 붕괴, 그리고 세상에서 출세할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환경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처럼, 이 지방 출신의 아이에게도 성공을 향한 맹렬한 야망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힐빌리 지역을 벗어나 군으로 갔고, 이어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으며, 마침내 예일 로스쿨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때 아우구스티노적인 통찰의 순간이 찾아왔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그를 정상까지 이끌어 주었지만, 그는 자신이 법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더구나 법률가로 일하고 싶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성공 중독자, 더 정확히 말해 인정 중독자였고, 그의 마음은 여전히 온전히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바로 이 공허함이 그로 하여금, 젊은 시절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예일에서 함께 어울리던 지식인층의 영향을 받아 그 신앙을 상당 부분 버린 상태였다. 그 뒤로 여러 거장들, 곧 톨킨, 루이스, 체스터턴, 아퀴나스 등을 읽거나 다시 읽는 일이 이어졌다. 또한 결정적 돌파구 역시 매우 아우구스티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성 암브로시오의 설교를 통해 성경을 세련되고 깊이 있게 읽는 법을 배우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망설임을 극복했듯이, JD 밴스 역시 고대와 현대의 스승들의 도움을 받아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밴스는 분명 매우 영리한 사람이지만, 지적인 것보다는 실존적인 것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인물이다. 이것이 르네 지라르가 그의 그리스도교 신앙 회귀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 위대한 프랑스계 미국 이론가는 피터 틸의 도움을 통해 밴스의 관심에 들어왔다. 부통령은 피터 틸을 “내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아마도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지라르의 “모방적 욕망”에 관한 설명, 곧 우리가 어떤 것을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 때문에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원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은 밴스에게 깊이 울림을 주었다.

밴스가 법조계에서의 성공을 그토록 절실히 원했던 것도, 바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지라르의 해석에 따르면, 모방적 욕망은 모방적 경쟁으로 이어진다. 밴스는 자신이 몸담았던 살벌한 경쟁의 세계 안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보았다. 또한 지라르가 타락한 인간이 경쟁적 폭력을 처리하는 역기능적 방식이라고 본 희생양 만들기의 본능을, 밴스는 소셜미디어에서 너무도 쉽게 형성되는 잔혹한 군중 속에서 보았다.

그러나 그가 지라르에게서 얻은 가장 중요한 통찰은,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위험한 충동들을 폭로하고 해체한다는 사실이었다. 밴스는 그 충동들을 자기 자신 안에서도, 또 동료들 가운데서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한 정치인의 자서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부통령이 가톨릭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가톨릭 사회교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참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는 또한 교회의 사회교리가 복음화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통찰을 확인해 준다.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밴스는 이 가르침의 폭넓음과 균형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가르침은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규정될 수 없다. “그것은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으며, 자유주의적이지도 권위주의적이지도 않다.”

그는 특히 교황 레오 13세가 제시한 사회교리가 경제 계급들을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보기를 거부하고, “상호 합의”가 “선한 질서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진다고 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 사회사상은 밴스에게 워키즘 진영에서 두드러지는 적대적 사회 이론화로부터 벗어나는 반가운 출구였다.

이 맥락에서 “또 하나의 뮌헨”이라는 제목의 장은 특히 많은 것을 밝혀 준다. 밴스는 신임 상원의원으로서 매년 열리는 뮌헨안보회의에 의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던 일을 회고한다. 그 회의는 유럽과 미국의 가장 뛰어난 정치권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젊은 상원의원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그곳의 대화에 영적·도덕적 실체가 얼마나 결여되어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전후 유럽 동맹의 창설자들은 유럽 민주주의의 윤리적·종교적 성격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했지만, 그들의 후계자들은 이 차원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밴스는 말한다. “우리는 새로운 신조가 형성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권리라는 어휘는 유지하면서도, 그 권리에 의미를 부여했던 종교적 토대는 벗어 던진 세속적 세계 자유주의였다.”

부통령은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더 최근의 교황 레오 14세와 매우 가까운 어조로, 이전 세대의 유럽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수호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서구 그리스도교 문명과 그 문명에 고유한 가치들이었다.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자연권의 개념, 이웃에 대한 의무감,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무가 그것이었다.”

사회 질서와 신앙의 중첩에 대한 더욱 예리한 분석은 “음울한 학문”이라는 장에서 나타난다. 이 책의 이 부분을 읽는 내내 나는 여러 해 전 가톨릭대학교에서 로버트 소콜로프스키 몬시뇰과 함께했던 1년짜리 정치철학 세미나를 떠올렸다. 소콜로프스키 몬시뇰은 오늘날 우리가 정치의 핵심 관심사라고 여기는 것이 고전적 관점과 완전히 뒤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정치가 대체로 경제 문제에 몰두하는 반면, 고대 정치는 무엇보다 덕의 함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고전 사상가들에게 경제학, 문자 그대로 가정의 법은 사적 질서에 속한 이들의 영역이었다. 밴스는 『뉴욕 타임스』에서 경제학자들이 모든 사회과학자들 가운데 가장 많이 “논의되는” 이들이며, 『의회기록』에서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학자들이라고 지적한다.

단순한 진실은, 우리가 공동의 삶을 경제적 렌즈를 통해 읽는 경향이 있으며, 생산성을 성공의 가장 두드러진 척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밴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당신의 삶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회를 생각하는 데 있어 너무나 빈약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방식이다.” 그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가족, 우정, 교육, 놀이, 그리고 종교라고 말한다.

이러한 우선순위는 그가 가톨릭 사회교리를 받아들인 결과이다. 물론 레오 13세와 그의 후계자들은 시장과 그 본질적 역동성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들은 시장을 우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을 인간화하기 위한 도덕적·법적 틀 안에 놓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JD 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마지막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부통령은 노쇠한 교황에게 큰 존경심을 품고 있었고, 교황이 선종 바로 전날 자신에게 알현을 허락해 준 것에 대단히 감사했다. 바티칸 외교관들과의 만남은 그보다 덜 만족스러웠다.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미국이 국경을 통제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밴스에게 이주민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바티칸은 정확히 무엇에 반대했던 것인가? 추방 일반인가? 범죄자 추방인가? 추방의 속도인가? 밴스는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다고 말하며, “바티칸이 자신의 도덕적 지침을 진부한 상투어의 수준 너머로 나아가게 하려 하지 않는 듯 보였다”는 사실에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그것은 혹독한 평가이지만, 나는 솔직히 그 평가에 공감한다. 교회가 복잡한 정치적 문제들을 다룰 때 같은 경향을 너무 자주 발견해 왔기 때문이다.

JD 밴스의 야망은 그를 부통령직으로 이끌었고, 그의 아우구스티노적인 불안한 마음은 그를 가톨릭교회로 이끌었다. 결국 이 책은 그가 자신의 가톨릭 신앙이 지닌 영적 실체를 정치가로서의 직무에 어떻게 적용하려고 애쓰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종교를 경멸하는 세속주의와, 정치 위에 떠 있으려는 종교성 모두에 대한 도전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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