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병원에 공급되는 보건산소마저 김정은과 노동당의 ‘사랑’과 ‘은덕’으로 선전하고 나섰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용 산소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은 국가 보건체계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기본 기능이지만, 북한 선전에서는 이러한 최소한의 공공서비스조차 최고지도자의 특별한 시혜로 둔갑한다.
북한 매체는 보건산소공장에서 생산된 의료용 산소를 실은 차량들이 병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소개하며 “어머니당의 따뜻한 사랑”, “위대한 어버이의 하늘같은 은덕”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심지어 산소 운반차량의 엔진 소리에서도 김정은의 ‘인민관’과 ‘멸사복무 정신’을 느낄 수 있다는 식의 극단적인 찬양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선전문이 강조할수록 오히려 북한 보건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의료용 산소는 ‘은혜’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 책무
현대 의료체계에서 의료용 산소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산부인과, 호흡기질환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의료자원이다. 산소공장을 건설하고 생산된 산소를 병원에 공급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지도자의 특별한 결단으로 선전할 대상이 아니라 보건당국이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기본 업무다.
그런데 북한 매체는 산소공장 건설에서 생산, 공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김정은 개인의 관심과 배려에 연결시킨다.
공장을 건설하도록 한 것도 김정은이고, 건설현장을 찾아간 것도 김정은이며, 완공된 공장을 평가한 것도 김정은이라는 식이다. 정작 보건성이 어떤 기준으로 의료용 산소의 생산과 품질을 관리하는지, 전국 병원에 필요한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지역별 공급망은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의 제도와 시스템은 사라지고 최고지도자 한 사람의 ‘사랑’만 남는 것이다.
평양의 한 공장이 북한 의료현실을 증명하지 않는다
북한 매체는 “세상을 둘러보면 우리의 보건산소공장처럼 철두철미 인민을 위해 건설된 공장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객관적인 비교나 통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공장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북한 전역의 병원과 진료소에서 환자들이 필요할 때 안정적으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다.
평양의 특정 공장에서 산소가 생산되고 차량 몇 대가 병원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전국적인 의료용 산소 공급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농촌이나 지방병원에서는 의료용 산소가 어느 정도 공급되는지, 산소통과 관련 장비는 충분한지, 전력 부족으로 산소발생장비 사용에 어려움은 없는지,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필요한 산소를 즉시 공급할 수 있는지 등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 선전은 이러한 질문에는 침묵한다.
‘인민을 위한 의료’보다 앞서는 지도자 우상화
이번 보건산소공장 선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의료정책보다 지도자 우상화가 앞서 있다는 점이다.
산소를 생산하는 노동자도, 이를 운반하는 기사도,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도 선전의 중심이 아니다. 모든 성과는 결국 김정은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이는 북한 선전에서 반복돼온 전형적인 방식이다. 주택이 건설되면 지도자의 사랑이고, 식료품이 공급되면 지도자의 은정이며, 휴양시설이 생기면 지도자의 배려이고, 이번에는 병원에 산소가 공급되는 것까지 지도자의 은덕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모든 공공서비스가 최고지도자가 주민들에게 내려주는 선물이 된다.
그 결과 주민은 권리를 가진 국민이 아니라 지도자의 시혜를 기다리는 수혜자로 전락한다.
필요한 것은 찬양이 아니라 보건의료의 정상화
북한 주민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산소운반차량의 엔진 소리에서 김정은의 사랑을 느끼라는 선전이 아니다.
필요할 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 충분한 의약품과 의료기기, 안정적인 전력과 의료용 산소, 숙련된 의료진, 그리고 거주지역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보건체계가 필요하다.
보건산소공장이 실제 주민들의 생명 보호에 기여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긍정적일 수 있다. 문제는 이를 또다시 김정은 개인의 ‘하늘 같은 은덕’으로 포장하면서 국가가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을 지도자의 개인적 시혜로 바꾸는 데 있다.
병원에 의료용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특별한 ‘사랑’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북한 선전이 정말 ‘인민제일주의’를 말하고 싶다면 최고지도자에 대한 찬양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전국의 병원에 얼마나 많은 의료용 산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는지, 지방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이 실제 얼마나 개선됐는지부터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산소는 주민이 지도자에게 감사하며 받아야 할 선물이 아니다. 아픈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생명의 기본 조건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