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아데이(Jason Arday)는 누구인가? 지난주까지만 해도, 최근 영미권 고등교육계에서 벌어진 가장 큰 스캔들의 중심인물이 된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육사회학 교수이자 지저스 칼리지(Jesus College)의 교수 펠로(professorial fellow)였다. 이 직책들은 영국 학계뿐 아니라 세계 학계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자리들에 속한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는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세계 5위 대학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 ‘교수(professor)’라는 직함은 대학 교원 가운데 최고 직급에만 주어지며, 전체 대학 교원의 약 10~15%만이 이 직함을 갖는다. 교수 펠로라는 지위는 아데이를 케임브리지의 최상위권 칼리지 가운데 하나인 지저스 칼리지의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이러한 임용은 길고 빛나는 학문적 경력의 전성기에 이르러서야 얻을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아데이는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지 불과 8년 만에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가 이처럼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은, 2023년 그를 채용할 당시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육학부장이었던 힐러리 크레민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그가 인종, 불평등, 교육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육담당 부총장인 바스카르 비라 교수에 따르면 그는 “탁월한 학자”였다. 아데이의 임용을 발표한 케임브리지대학교 보도자료는 그를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케임브리지에서 교수직에 임명된 사상 최연소 흑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오늘날 제이슨 아데이는 교수도, 펠로도 아니다. 케임브리지에 온 지 3년 만에 그는 두 직책에서 모두 사임했다. 대학 측이 이 스타 학자의 “학문적 자격과 명예직 임명 경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공식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의 일이었다.
아데이가 이처럼 엄청난 추락을 맞게 된 것은 그의 학문적·개인적 이력에 대한 2주간의 집중적인 공개 검증이 이어진 뒤였다. 가장 심각한 것은 표절과 학문적 부정행위 혐의이며, 일부 의혹은 202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그의 개인사에 등장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차례의 의학적 비극과 기적 같은 회복, 놀라운 운동 능력, 끔찍한 인종적 괴롭힘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데이의 인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그 양과 비현실성이 너무나 엄청나 문자 그대로 incredibilis, 곧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할 만하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허구 창작자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많은 언론사와 출판사, 대학으로부터 찬사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의 제도와 문화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제이슨 아데이는 정체성과 자기구성(self-construction)에 집착하는 전문 분야와 사회 안에서 활동했다. 그런 세계에서 허풍과 허구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물론 아데이가 거짓 이력을 이용해 출세한 최초의 학자는 아니다. 최근 미국 고등교육계에서는 이른바 ‘인종적 사기(racial fraud)’로 불리는 잘 알려진 사례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레이철 돌레잘(Rachel Dolezal, 현재 이름은 은케치 아마레 디알로[Nkechi Amare Diallo]), 제시카 크루그, 앤드리아 스미스 등이 그 사례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데이만큼 다채롭고 믿기 어려운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언론 보도를 통해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야기의 대강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세 살 때 자폐증과 전반적 발달지연(global developmental delay)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수화에 의존해야 했고 열한 살까지 말을 하지 못했으며, 열여덟 살까지 문맹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열여섯 살 때 두 차례의 학업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이처럼 엄청난 역경을 극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 듯, 아데이는 또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십대 시절 신체적 폭행을 당한 뒤 뇌전증이 생겼고, 교통사고로 3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그 과정에서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을 앓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중 뇌종양이 발생했으며, 논문 심사를 앞두고 일과성 뇌허혈 발작에 가까운 ‘미니 뇌졸중’을 겪어 단기 기억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이다.
또한 마라톤 도중 뇌전증 발작을 일으켜 비골에 실금골절을 입었고, 그 상태로 35일 동안 30회의 마라톤을 완주했는데 그 가운데 9회는 골절된 다리로 뛰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운동 능력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데이는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6일 동안 600마일을 달렸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는 600마일을 12일 동안 달린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크리스털 팰리스의 18세 이하 축구팀에서 뛰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세계적 수준의 아마추어 장거리 달리기 경력을 통해 그는 영국 내 80개 이상의 자선단체를 위해 550만 파운드를 모금했다고도 했다. 나중에는 이 돈이 100명으로 구성된 단체가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자신이 비밀유지협약에 서명했기 때문에 그 100명이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엄청난 성공 때문에 끔찍한 인종적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아데이는 복면을 쓴 침입자로부터 캠퍼스에서 두 차례 협박을 받았고, 교내 우편을 통해 총알과 바나나를 각각 한 차례씩 받았으며, 부모의 집에는 잘린 돼지 머리가 우편으로 배달되었고, 여러 차례 강간 협박과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들은 그의 이야기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그 밖에도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학계와 언론에서 아데이를 평가할 위치에 있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왜 그의 믿기 어려운 주장들을 그저 사실로 받아들였을까?
간단한 대답은 아데이가 시장의 수요를 직관적으로 파악했거나 조사한 뒤, 그 수요에 맞는 이야기를 공급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들이 원했던 것은 역경을 이겨낸 전통적인 성공담이었을 수도 있고, 최첨단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성공 사례였을 수도 있으며, 인종적 억압에 맞서 끈질기게 견뎌낸 영원한 인내의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이 답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있다.
정체성은 오늘날 영미권의 ‘치료주의적 문화(therapeutic culture)’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 문화는 오늘날 우리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자 행동양식이다. 치료주의적 세계관 안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안녕을 위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거의 없으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고 긍정해 주는 것이다.
대학은 이러한 문화가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장소다. 인종, 민족성, 젠더, 성적 지향, 체형, 신체적·정신적 능력에 관한 정체성 주장을 전제로 삼는 학문 분야 전체가 존재한다. 억압과 불평등에 관한 서사, 그리고 이 둘을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는 사고는 이러한 분야에 필수적이다.
‘삶의 경험(lived experience)’을 둘러싼 스토리텔링, 심지어 ‘자기민족지(autoethnography)’와 ‘자신의 현실에 이름 붙이기(naming one’s reality)’는 이른바 ‘불만 연구(grievance studies)’뿐 아니라 사회학과 교육학처럼 언뜻 보기에는 덜 분명한 분야에서도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아데이가 두각을 나타낸 분야들이다.
이와 같은 ‘비판적(critical)’ 학문 분야들은 그 자체의 구성 원리 때문에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를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기 쉬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
대학의 전통적인 전문적 자율성과 동료평가(peer evaluation)의 관행은 이러한 치료주의적 가치의 영향력을 더욱 증폭시킨다. 케임브리지에서 아데이를 채용한 것은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였으며, 그 위원회의 다수는 교육학과 교육사회학 교수들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들의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한 신문은 심사위원회가 이미 아데이를 그 직책의 적임자로 낙점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평가 절차는 사실상 형식적으로 “절차만 밟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교수들에게는 판단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다. 그들이 아데이가 훌륭하다고 말하면, 정의상 그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셈이었다.
이러한 권한 남용을 내부에서 바로잡기 위한 장치들은 약했으며, 동료 간의 우호적 관계, 전문적 판단에 대한 존중, 정체성 주장에 대한 민감성 같은 규범들에 의해 번번이 약화되었다. 아데이의 경우에는 오히려 견제 장치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다.
케임브리지에 임명된 뒤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아데이는 영국의 서로 다른 5개 대학으로부터 5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경우에서 그의 학문적 업적보다 그의 인생 이야기가 훨씬 더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국제적인 언론의 집중 보도 덕분에 제이슨 아데이의 학문적 행위는 마침내 그에게 학위와 각종 명예를 수여했던 기관들에 의해 엄격한 검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해 온 인생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그의 경력 상승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수준의 분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오히려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케임브리지대학교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영국 국가와 사회가 교육학과 사회학의 학과·대학원·연구센터에 부여해 온 권한이다.
제이슨 아데이의 실제 인생사는 예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건이 오늘날 대학에 관해 드러내는 사실은 지극히 평범하다.
아데이는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충분히 예견 가능한 사고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