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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37] 두댓의 10년

2026-08-21 07:54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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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히친스 Dan Hitchens is a senior editor at First Things. 수석 편집자


보수적 그리스도교 지식인들에게 이것은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작곡을 그만두고 연기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팬들이 느낄 슬픔과 충격을 상상해 보라. 그러면 로스 두댓(Ross Douthat)이 『뉴욕 타임스』를 떠나, 바리 와이스가 새롭게 이끄는 「60 Minutes」의 TV 특파원이 된다는 소식이 어떤 충격을 주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문화가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 듯한 일련의 지진을 처음으로 감지하기 시작했던 2015년 무렵부터, 두댓의 칼럼은 보기 드문 지혜의 시금석과도 같았다. 이제 그 칼럼은 사라졌다.

언론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이동은 더욱 괴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결국, 당신이 아는 재능 있는 사람은 누구든 언젠가는 바리 와이스에게 스카우트된다는 철칙을 다시 한번 입증하기 때문이다. 가장 무명의 편집자에서부터 가장 이름난 공적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하나둘씩 결국 그녀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들은 온전히 ‘바리 와이스 제국’의 사람이 된다. 당신이 그들에게 기고를 청탁하면, 그들은 당신의 이메일에 답장하는 것 자체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라면서 제발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답한다.

뭐, 어쩔 수 없다. 침울해하는 대신 두댓이 지난 10년간 보여준 놀라운 글쓰기를 기념해 보자. 이를테면 나는 그의 「이민에 관한 열 가지 명제」(2016)를 떠올린다. 그는 이 글에서 진보적 독자들을 향해 대규모 이민이 과연 현명한 정책인지 매우,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들을 치밀하게 제시했다. 사회문화적 논거에 설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적어도 그 문제의 정치적 현실만큼은 직시해야 한다고 썼다.

“자신들이 인식하는 문화적 변형에 대한 토착 주민들의 반발은 매우 강력하며, 이를 고려하지 않는 어떠한 정치도 실패할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공직에 있지 않은 몇몇 꽤 유명한 인사들이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더라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댓 특유의 섬세함과 반대 논거를 대하는 관대함, 그리고 구별을 통해 논증해 나가는 거의 도미니코회적인 습관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간헐적인 이민은 동화를 촉진하지만, 지속적인 이민은 동화를 제한한다.”)

때로는, 특히 이른바 ‘대각성(Great Awokening)’이 황홀경에 가까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이런 접근법은 지나치게 신중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댓은 계속해서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고, ‘워크(woke)’ 문화가 지닌 준종교적 헤게모니 자체가 어쩌면 불안정할 수 있다고 추론했다.

“그러한 불관용이 필연적으로 문화 전체에 대한 더 큰 권력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아니면 우리 사회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에서는 패권자의 열성 자체가 스스로를 제한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권력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행사하면 더 강한 반발을 불러오고, 신학적 획일성을 너무 명시적으로 강요하면 새로운 저항의 중심을 만들어 내며, 겉보기에는 견고하지만 위기의 열기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브레즈네프 시대식―혹은 19세기 말 보스턴식―동결 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나는 이 문장을 2022년 모닝사이드 인스티튜트 강연에서 처음 들었다. 그 강연은 이후 『First Things』에 게재되었다. 당시 나는 “흠, 두고 보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의 사건들은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두댓의 수정구슬은 유난히 정확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가 이제는 자신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그는 칼럼니스트의 연단을 떠나 TV 기자의 이동식 카메라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시대에 특히 중요한 두 가지 주장을 내놓았다. 하나는 기술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에 관한 것이다.

기술에 관해서 그는 스마트폰,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AI)이 미치는 영향을 일종의 대멸종적 ‘병목현상’으로 보았다. 즉 가상이 현실보다 더 매력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더 강력해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두댓은 모든 견고한 것이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언어들은 사라지고, 교회들은 소멸하며, 정치적 사상은 증발하고, 예술 형식은 사라질 것이다. 읽고 쓰고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쇠퇴하고, 인류의 재생산도 실패할 것이다. 단,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들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도록 보장하는 일에 의도적이고 자각적이며 약간은 광신적이기까지 한 사람들만은 예외일 것이다.”

두댓을 비판할 대목이 있다면, 그가 때때로 경제적 불의와 거대 기업들이 행사하는 막대한 독점 권력에 대해 지나치게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일 것이다. 예컨대 여기에서는 익숙한 제도와 관행의 파괴가, 매우 특정한 기업들이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가속해 온 일이 아니라 마치 피할 수 없는 과정처럼 묘사된다. 그럼에도 기술 시대의 본질과, 그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개인에게 필요한 덕목을 가장 핵심적으로 묘사한 사람이 아마 두댓이었을 것이다.

종교에 관해서 그는 동료 신자들에게 자신의 신앙적 확신을 지키는 데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권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료를 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9개월 더 오래 살고, 가끔 외롭다고 느낀다고 답할 확률도 2.7% 낮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하지 말라.

“종교적 믿음은 큰 위안을 줄 수 있고, 우리 모두는 뭐랄까, 분명 이 세상 너머에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정치 속으로 도피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무신론이 솔직히 말해 상당히 무리한 주장이고,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지극히 개연성 있는 입장이라는 논증을 정면으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찬사는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초기에 벌어졌던 논쟁들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가톨릭 교리의 중대한 진리들이 마치 축구공처럼 이리저리 걷어차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으며 때로는 신앙마저 잃었다. 심지어 명예교황조차 ‘베드로의 배’가 “거의 난파 직전까지 물이 차오른” 상태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에 교회의 가르침을 향한 공격을 누그러뜨리고, 그 공격들의 지적 취약성을 드러내며, ‘교리 발전’이라는 달콤한 수사에 가려진 실상을 벗겨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한 가지 가능한 답은 세계 최고의 신문 지면에 실렸던, 짜증날 만큼 합리적이고 끈질기도록 집요했던 일련의 칼럼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댓은 여러 면에서 ‘아타나시우스의 역할’을 맡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늘 몸에 밴 아이러니와 양쪽을 공평하게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기도 했고, 보수적 가톨릭 진영의 기존 질서와 그가 맺고 있던 다소 불확실한 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는 성경과 성전에 근거한 논증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세속적 자유주의 독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99.99%가 본질적으로 완전히 잊히기 마련임에도, 나는 아직도 2016년 어느 저녁 당시 함께 살던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로스 두댓이 ‘가톨릭 학계에 보내는 편지’를 썼어. 차 한 잔 끓여서 같이 읽을까?”

우리는 그것이 진짜 하나의 사건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앉아서 그 훌륭한 반론을 읽었다. 그 글은 온화한 자기비하에서 시작해 한 단계 한 단계 고조되다가 마침내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위한 고결한 분노에 이른다.

나에게 그것은 ‘두댓의 10년’ 가운데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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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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