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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대 대법원장 |
대한민국에서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중대한 범죄 혐의로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되었거나 사법적 판단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세력이 이제는 자신들에게 불편한 사법부를 향해 칼을 들고 있다.
급기야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까지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서면 제청을 문제 삼아 사퇴와 탄핵을 주장하고 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여권 주도로 대법원장 출석 요구까지 의결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력이 사법부를 대하는 태도다. 자신들과 관련된 수사와 재판은 ‘정치 탄압’이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은 ‘사법 쿠데타’라 부르며, 판결한 법관에게는 탄핵을 들이민다면 결국 무엇이 남겠는가. 판결은 법률과 증거가 아니라 국회 의석수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사법부 독립이 무너지면 법치는 끝난다.
그들은 말할 것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우리에게 권력을 주었다”고. 그러나 민주주의는 단순히 표를 많이 얻은 세력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제도가 아니다. 선거는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헌법은 그 권력의 한계를 정한다. 다수결조차 헌법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역사는 이 점을 무섭도록 가르쳐 왔다. 히틀러 역시 선거와 합법적 제도의 틈을 이용해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간 뒤 견제기관을 하나씩 무력화했다. 김일성의 집권 과정은 소련의 지원이라는 결정적 배경이 있었으므로 단순히 ‘대중의 지지로 등장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후 북한 정권이 끊임없이 ‘인민의 지지’를 권력 정당화의 근거로 내세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두 체제를 역사적으로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중의 지지라는 명분이 권력의 무제한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교훈만큼은 같다.
국민이 뽑았다는 사실이 헌법 파괴의 면허증이 될 수는 없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은 국민을 대신하여 헌법을 지키라고 준 권력이지, 자신을 심판하려는 기관을 제거하라고 준 권력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법원장 개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대법원장을 정치적으로 몰아낼 수 있다면 내일은 대법관이고, 그다음은 자신들의 뜻과 다른 판결을 내리는 일선 판사일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권력자의 의중을 살피는 법원뿐이다. 그 순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권력이 괴물이 되는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국민이 “설마 거기까지 가겠는가”라고 방심하는 동안 견제기관 하나가 무너지고, 또 하나가 침묵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정치인들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국민은 권력을 다시 헌법의 우리 안에 가둘 수 있는가.
선거로 만든 권력이 괴물이 되었다면 그것을 다시 통제해야 할 주인도 국민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헌법을 넘어서는 순간 국민이 멈춰 세워야 한다. 사법부마저 정치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방치한다면 그다음에는 국민을 보호해 줄 마지막 울타리도 사라진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치인을 믿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헌법을 믿어야 한다. 권력을 믿을 수 없을수록 견제와 균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라의 최종적인 주권자인 국민을 믿어야 한다.
괴물을 만든 것도 결국 정치이고 권력이지만, 괴물을 다시 우리 안에 가둘 수 있는 힘은 오직 깨어 있는 국민에게 있다.
그래도 우리는 국민을 믿어보려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