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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 영토에서 1989년 톈안먼 사태 희생자들을 공개적으로 추모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던 홍콩에서, 6·4 촛불집회를 이끌어 온 민주인사들이 결국 ‘국가정권 전복 선동’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홍콩 고등법원은 21일 민주파 활동가 리줘런(Lee Cheuk-yan·69)과 인권변호사 쩌우싱퉁(Chow Hang-tung·41)에 대해 홍콩 국가보안법상 ‘국가정권 전복 선동죄’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은 해산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이른바 홍콩 지련회의 전직 지도부로, 수십 년 동안 빅토리아 공원에서 6·4 촛불 추모 집회를 개최해 왔다. 두 사람에게 적용된 혐의의 핵심에는 지련회가 오랫동안 내걸었던 ‘일당독재 종식’이라는 구호가 있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담당하는 3명의 판사는 이 구호가 단순한 정치적 의견 표시를 넘어 중국 공산당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적대감과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중국의 기본적 정치체제를 훼손하려는 목적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폭력이나 폭력의 위협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정치적 활동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봤다.
검찰 역시 중국 헌법이 중국 공산당의 지도적 지위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일당독재 종식’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행위는 중국의 기본 통치 체제를 뒤흔들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리줘런과 쩌우싱퉁 측은 자신들의 행동이 폭력적인 정권 전복 시도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기초한 평화적 정치적 요구였다고 맞섰다. 리줘런은 재판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공산당 자체를 물리적으로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통치자를 선택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로 나아가자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민주인사 두 명의 형사재판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집회의 허용 범위가 어디까지 축소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 지련회는 30년 가까이 매년 6월 4일 빅토리아 공원에서 톈안먼 사태 희생자들을 기리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은 중국 본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홍콩의 자유를 상징해 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집회가 금지된 데 이어 같은 해 6월 베이징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후 6·4 대규모 공개추모 행사는 사실상 사라졌고, 지련회도 2021년 해산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사건의 기소 논리가 ‘전복’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단체는 리줘런과 쩌우싱퉁이 표현·결사·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장기간 구금됐다며 두 사람의 석방을 촉구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총이나 폭탄이 아니라 구호와 촛불,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행위가 국가안보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홍콩 시민사회에 상당한 위축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홍콩 당국의 입장은 정반대다. 당국은 국가보안법이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혼란에 빠진 홍콩의 안정과 국가안보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주장해 왔다. 지련회에 대해서도 ‘일당독재 종식’이라는 목표가 중국 공산당의 지도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국가정권 전복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 왔다.
이번 재판의 또 다른 피고인인 민주파 원로 허쥔런(Albert Ho·74)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 같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리줘런과 쩌우싱퉁은 2021년 기소된 뒤 장기간 구금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국가보안법상 이들에게는 최고 1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법원은 유죄 판결 직후 형량을 확정하지 않았으며, 오는 8월 28일 리줘런·쩌우싱퉁과 앞서 유죄를 인정한 허쥔런에 대한 정상참작 사유를 들을 예정이다.
홍콩의 6·4 촛불집회는 오랫동안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었다. 중국 본토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역사를 기억하고,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시민들이 스스로 추모할 수 있다는 홍콩의 자유를 상징했다. 그 촛불이 사라진 자리를 이제 국가보안법 재판이 대신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홍콩에서 ‘무엇을 기억할 자유가 있는가’, ‘어떤 정치적 주장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국제사회에 던지고 있다. 그리고 오는 형량 선고는 국가보안법 아래 홍콩의 시민적·정치적 자유가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더 좁아질지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장면이 될 전망이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