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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47]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와 삼위일체론

2026-08-31 07:2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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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캐리 Phillip Cary is author of The Nicene Creed: An Introduction. 『니케아 신경: 입문』 저자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최근 자신이 니케아 신경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다고 말해 적지 않은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반응은 이해할 만하다. 무엇보다 니케아 정통 신앙은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대부분의 개신교 전통이 고백하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복음주의 전통을 대표하는 저명한 철학자이자 호교론자가 이와 동일한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이해해야 할 점은, 왜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이 일에 그다지 당혹감을 느끼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니케아 신경의 대부분, 곧 삼위일체, 창조, 강생, 부활 등에 대한 신앙은 크레이그도 받아들인다. 또한 그는 본래 가장 논쟁적이었던 표현, 곧 하느님의 아들이 성부와 “한 본질”(homoousion)이라는 고백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신적 본질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데 분명히 동의한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성자가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셨다”는 니케아의 가르침, 혹은 그리스어를 더욱 정확하게 옮기자면 “모든 시대에 앞서 성부에게서 나셨다”는 가르침에 있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낳다”(begotten)라는 말이 더 이상 익숙한 표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적인 문자적 의미에서 이 말은 생물학적 생식과 관련된 일을 가리킨다. 아버지는 자식을 낳고, 어머니는 잉태하며, 자녀는 태어난다.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의 이러한 일상적 관계를, 성부께서 당신의 영원한 성자를 “모든 시대에 앞서” 낳으신다는 것에 적용하려면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원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다른 시대를 이어받는 식의 시간적 연속성과 무관하다. 이를테면 엘리자베스 2세 시대 다음에 찰스 3세 시대가 이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니케아 교부들은 성자에 대하여 “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거나 “그분은 무에서 생겨났다”고 말하는 모든 가르침을 배격함으로써 성자의 나심이 시간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그들은 성자께서 영원 안에서 성부에게서 기원하시는 방식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예를 들어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하느님의 불가해성에 관하여 유명한 일련의 설교를 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바로 성자의 영원한 나심이었다.

이것은 니케아 전통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 전통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산술상의 난제로 보지 않는다. 실제로 니케아 신경에는 “셋”이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오히려 삼위일체의 신비는 기원의 관계에 있다. 성자는 나시고, 성령은 발출하시며, 성부께서는 아무런 기원을 갖지 않으신다. 물론 하느님을 “하나 안의 셋”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삼위일체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콩깍지 하나 안에 콩 세 알이 들어 있는 경우에도 똑같이 “하나 안의 셋”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자의 영원한 나심이 어떻게 걸림돌이 되는가? 크레이그는 니케아 교부들의 의도와는 달리, 이 가르침이 종속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해 왔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만일 성자가 자신의 존재를 성부에게서 받는다면, 존재론적으로 성부보다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니케아 전통의 출발점인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단죄된 위대한 이단자 아리우스의 논리이기도 하다.

크레이그는 아리우스의 결론을 피하기 위해서는 성자가 그 신적 본성에 있어서 성부에게서 나셨다는 전제를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니케아 신학자들은 아리우스의 결론을 부정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가능한 다른 길을 택하였다. 곧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서 기원한다고 해서 그 존재가 열등한 것은 아니다라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아들은 자신을 낳은 아버지나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보다 덜 인간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니케아 공의회 이후 한 세기가 지난 뒤 칼케돈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 본질을 가지시며, 성부와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가지신다. 성자는 시간 안에서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 인간 본성을 받으시고, 영원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심으로 신적 본성을 받으신다.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지 수십 년 뒤, 에우노미우스라는 아리우스파 인물과 논쟁하던 니케아 신학자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논리적 구분을 명확히 하였다. 신적 본질이 하나라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모든 신적 속성, 곧 영원성, 편재성, 전능성 등을 동등하고 완전하게 공유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원을 갖지 않는 것, 또는 다른 존재에게서 유래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신적 속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신적 본질 자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부께만 고유한 것이다.

이러한 명료화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기원의 관계를 통해 구별되신다는 니케아의 가르침을 가능하게 하였다. 곧 성부께서는 기원이 없으시고, 성자께서는 나시며, 성령께서는 발출하신다. 이것은 또한 훗날 “자존성”(aseity, 라틴어 a se, 곧 “자기 자신에게서 존재함”)이라고 불리게 된 속성이 성부께 특징적인 것이며, 성자나 성령께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크레이그가 니케아 정통 신앙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논리적으로 볼 때 성자와 성령도 성부와 동일한 자존성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기인한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 약 한 세기에 걸쳐 정통 교리로 확립된 이러한 신학적 명료화는, 삼위일체에 관해서는 “하나 안의 셋”이라는 말만으로 거의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복음주의 단체들의 공식 신앙 선언문은 하느님께서 “한 신적 본질 안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고 밝힌다. 이 표현은 이단이라고 할 만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신적 본질을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세 개별자를 담고 있는 일종의 그릇처럼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homoousion)은 받아들이면서도, 성자의 나심과 같은 기원의 관계를 제외해 버린다면 이런 그림에 쉽게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가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것이 그리스도와 구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잊어버린다면, 이러한 이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저명한 철학자가 니케아 정통 신앙을 거부해도 그다지 큰 당혹감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를 괴롭히는 삼위일체 신앙의 결핍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 결과 설교에서는 예수님을 하느님께 이르는 길로 묘사하면서도, 정작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며, 우리에게 구원뿐 아니라 당신 자신의 육신 안에서 하느님 자신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핍을 메우기 위해 힘쓰고 있는 젊은 세대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인물은 프레드 샌더스와 매슈 배럿이다.

그들과 같은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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