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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62] 빈 라덴이 남긴 유산

2026-09-15 07:2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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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R. 리노 R. R. Reno is editor of First Things. 편집장


충격 그 자체였다. 비행기 한 대가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또 한 대가 날아들었다. 사이렌이 울렸다. 아침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다가 이내 말을 잃은 뉴스 진행자들의 보도로 대체되었다.

한 대의 비행기가 펜타곤을 들이받았다. 작은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1,000피트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초고층 빌딩 하나가 무너졌다. 이어 또 하나가 무너졌다. 거대한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수천 명이 죽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새러소타의 한 초등학교에서 2학년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거의 모두 흑인이었고, 교사 케이 대니얼스 역시 흑인이었다.

이 행사는 그의 행정부가 내세운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훈훈한 분위기의 사진 촬영 행사로 기획된 것이었다. 오전 9시를 몇 분 넘긴 시각, 비서실장 앤드루 카드가 조용히 다가와 대통령의 일정을 중단시켰다. 그가 대통령의 귀에 속삭이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남아 있다.

“두 번째 비행기가 두 번째 빌딩을 들이받았습니다. 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그 순간 조지 W. 부시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심각하게 집중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새롭고 극적인 사실들이 갑자기 눈앞에 제시될 때 필요한 바로 그런 집중이었다. 그 사실들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닥쳐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기에 쉽게 소화하기 어려웠고, 이제 무엇이 뒤따를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그런 반응에서 부시는 현실과 완전히 맞닿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건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 저녁 부시는 강력하고 감동적인 연설로 국민에게 말했다. 그의 지도 아래 불과 몇 주 안에, 그리고 의회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군사력 사용이 승인되었고, 애국법(Patriot Act)이 통과되었으며, 교통안전청(TSA)이 설립되었다. 이듬해에는 국토안보부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취해진 조치들은 수많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앤드루 카드의 말은 옳았다. 오사마 빈 라덴은 공격을 조직했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대응은 합리적이었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와 맞섰던 앨 고어가 이보다 덜 강경하고 덜 공격적인 길을 택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러나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그것이 테러와의 전쟁이든 빈곤과의 전쟁이든,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멈추고 싶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9·11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여러 단계에 걸쳐 취한 군사적 대응이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1991년 소련의 붕괴를 앞둔 시기에, 제1차 부시 행정부가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한 것은 미국 군사력의 불패 이미지를 더욱 빛나게 했다. 게다가 그 이미지는 군사 점령이라는 혼란스럽고 지저분한 과정으로 훼손되지도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0년대 내내 자제를 보였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그리고 미 해군 함정 USS 콜(Cole) 폭탄 테러와 같은 도발을 당하고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강력한 대응의 부재가 빈 라덴과 다른 이들을 대담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실제로 9·11 이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대응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클린턴 행정부의 절제된 접근법은 미국 권력의 한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일을 피했고, 그 결과 냉전 이후 체제의 단극적이고 미국 주도적인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쩌면 무제한적인 권력이라는 환상은 21세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깨졌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그 환상을 산산조각 낸 것은 9·11에 대한 우리의 군사적 대응이었다. 2000년대 내내 계속된 중동의 소모적인 전쟁들은 2010년대 깊숙이까지 이어졌고, 지금 다시 불붙고 있다.

미국의 적대 세력들은 중요한 교훈 하나를 배웠다. 결정적인 패배만 피할 수 있다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상대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길 능력이 없다.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세계 체제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며, 심지어 자신들의 동맹국조차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국민이 그에 따르는 대가를 감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9·11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교통안전청 검색대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굴욕만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전개된 ‘테러와의 전쟁’은 오늘날의 감시국가를 출범시켰다. 제이컵 시걸은 9·11 이후 통과된 법률들과 설립된 기관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그 기간 동안 어떻게 국내 통제의 도구로 전용되었는지를 기록해 놓았다.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9·11에 대한 대응은 걷잡을 수 없는 재정적자 지출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미국 국민이 비용을 부담하려 하지 않았던 전쟁과 각종 정책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기 위해 막대한 적자 지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9·11은 또한 21세기 초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통치 계층이 국내 문제를 외면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을 제공했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 경제 세계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구축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노동계층은 그 부정적 결과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엘리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속도가 붙고 있던 대규모 이민과 인구구조 변화의 해로운 결과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여러 중요한 측면에서 볼 때, 9·11은 자신이 불러일으킨 대응들을 통해 포퓰리즘의 부상에 기여했다.

나는 오사마 빈 라덴에게 조금도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테러 계획으로 대학 시절 친구 세 명이 쌍둥이 빌딩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 뒤돌아보면, 슬픔은 누그러졌고 분노는 절제되었으며 애국적 격정도 식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대담한 적에게 마지못해 부여하게 되는 정도의 꺼림칙한 존중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그에게는 거대한 야망이 있었다. 리바이어던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Leviathan 구약 성서에 나오는 괴수 레비아탄에서 따온 것으로, '리바이어던'은 괴수 레비아탄의 영어 발음)

그는 실패했다. 그러나 아무런 결과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리바이어던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분노한 거대하고 강력한 짐승이 으레 그러하듯, 많은 것을 부수고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는 9·11 이후 미국을 이끌었던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과 같은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다면 나 역시 비슷한 결정을 내렸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기념일에 우리는 죽은 이들을 애도하자. 그리고 당시 우리 국가가 취했던 대응을 놓고 다시 소송하듯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삼가자.

우리의 과제는 지난 25년이 우리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겼는지를 명료하게 성찰하고, 우리가 물려받은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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