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가장 큰 화제가 된 인물은 제이슨 아데이였다. 2023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이 흑인 학자는, 인종적 불의를 바로잡고 ‘진정한’ 다양성을 이루려는 대학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로 대학 지도부의 적극적인 찬사를 받아왔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에 불행하게도, 아데이는 표절자이자 허풍쟁이이며 학문적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개적으로 폭로가 이어지자 아데이는 8월 5일 사임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아데이를, 대부분 백인으로 이루어진 진보주의자들이 ‘피해자’라는 존재에 집착한 결과 만들어진 희생자라고 본다. 그는 분명 진정한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기회가 왔음을 알아본 아데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해 누가 보아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지어냈다. 심각한 장애를 겪었다고 주장했는데, 자신이 더 불리하고 더 ‘주변화된’ 사람으로 보일수록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들이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분야, 곧 사회학과 교육학으로 들어갔고, 그 허구는 통했다. 신경 다양성을 지닌 흑인이라니! 그런 사람을 최고의 영예로운 자리로 끌어올린다는 생각만으로도 진보 진영에서는 거의 자발적인 오르가슴과도 같은 흥분이 일어났다.
아데이가 케임브리지에 임용된 직후부터 표절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학 당국은 조사를 거부했다. 지난해 한 언론인이 폭로 기사를 준비하자 그 기사를 막기 위한 법적 조치가 취해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데이는 그 언론인을 인종적 괴롭힘을 자행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또 다른 대학의 한 학자가 그의 연구 실적에 의문을 제기하자, 아데이는 그 학자를 고용한 대학에 인종차별 민원을 제기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 광범위한 표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문서로 입증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와 아데이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대학 모두 이러한 문제 제기를 묵살했다. 케임브리지에 있던 그의 지지자들은 공개서한에서 인종 문제를 방패로 내세웠다.
“우리가 흑인 학문을 조직적으로 지워버리려는 시도에 맞서 입장을 밝히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고등교육의 온전성 자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모든 고비마다 영국의 기득권 체제는 그를 보호했다. 아데이는 반드시 보호받아야 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를 비롯해 영국의 모든 주요 기관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아데이는 한 인간이 아니라 소중히 모셔야 할 성스러운 대상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대학의 공식 발표는 조금이라도 그를 모독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그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데이는 자신이 사실상 무슨 짓을 해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깨달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학문 경력이 아무리 사기적이었다 하더라도 아데이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측면이 있었을지언정, 기회를 포착하고 이용하는 데는 천재적인 능력이 있었다. 그는 책임을 묻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허용해 주는 분위기를 놀라운 기세로 이용했다.
그렇다. 아데이는 자신의 ‘흑인 특권’을 이용했다. 그러나 그 자신 역시 이용당했다. 그의 대학원 지도교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하이디 미르자는 그가 자살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야망 때문에 취약해진 하나의 장기 말이다.”
아데이의 학문적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무시당했던 동료 학자 데이비드 해리스도 당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데이 교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첨꾼들이 아니라 비판적인 친구들이다.”
나는 ‘아첨꾼들’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잘못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enablers)’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해 보인다.
이 사건 전체는 오늘날 대학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내 준다. 나는 20년 동안 교수로 일한 경험에 비추어 증언할 수 있다. 대학 교수들은 끊임없이 소문을 주고받으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대학의 정치와 사건들을 끝없이 세세하게 분석한다. 아데이의 사기성과 무능력이 케임브리지 교수들의 휴게실에서 널리 알려지고 수군거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 그럼에도 모두가 상황에 동조했고 겉모습을 유지했다.
그 거짓말을 함께 유지하기로 한 집단적 합의의 배경에는 아마도, 아데이가 교수진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정의라는 목표에 너무나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학문적 기준을 훼손하는 대가 정도는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도덕적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의심을 품은 사람들은 정체성 정치의 힘 앞에서 위축되었다.
왜 굳이 나서서 말하겠는가? 말해 봐야 고통과 보복만 돌아올 뿐이다.
(아데이의 표절을 상세히 밝혀낸 학자는 자신의 대학에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한 엘리트 대학 전체가 침묵으로 공모했다는 사실은 깊은 부패를 말해 준다. 지금은 고등교육에 좋은 시대가 아니다.
아데이 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바로 그달,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타일러 오스틴 하퍼의 글 「구색 맞추기용 흑인 교수의 고백: 나는 왜 학계에 대한 믿음을 잃었는가(Confessions of a Token Black Professor: Why I Lost Faith in Academia)」를 게재했다. 2020년 교수로 채용된 하퍼는 메인주의 명문 리버럴아츠 대학인 베이츠칼리지에서 겪은 일을 들려준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촉발된 이른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이후, 베이츠의 대학 지도부는 모든 전공에서 ‘인종, 권력, 특권, 식민주의(Race, Power, Privilege, and Colonialism, RPPC)’ 과목을 의무화하는 계획을 비롯한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했다. 하퍼는 처음부터 우려를 품고 있었지만, 신임 교수에게 어울리는 겸손한 태도로 판단을 유보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대학에 대해 불행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베이츠를 이렇게 묘사한다.
“현재와 미래의 엘리트들이 급진주의자나 피해자, 혹은 그 둘을 모두 연기하는 특권을 얻기 위해 돈을 내거나 돈을 받는 곳.”
베이츠에 오기 전까지 하퍼는 소수자 우대정책이 내세우는 취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즉 학문적 기준은 계속 유지하면서도, 불우한 배경이나 주변화된 공동체 출신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았거나 늦게 발현된 잠재력을 지닌 후보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교수 채용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경험하면서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이렇게 쓴다.
“베이츠에서 몇 년을 보낸 뒤, 나는 내가 머릿속에서 옹호해 왔던 소수자 우대정책의 모습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교수 채용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학문적 성취나 잠재력이 아니라 ‘흑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압도적인 ‘자격’이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가 표현한 대로 일종의 “워크(woke)식 짐 크로(Jim Crow)”가 작동하고 있었다. 즉 “백인 후보와 비백인 후보에게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체제였다.
물론 하퍼는 이러한 ‘근본적으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교수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부인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이는 베이츠에서 가장 유망한 젊은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자 이미 학문적 성취를 이룬 하퍼 자신 역시 그 체제 속에 연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베이츠의 고위 지도부가 자신을 ‘흑인’ 문제와 관련된 위원회에 배정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점차 자신이 학자 공동체 안에서 동료 교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기 말이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인물, 그리고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흑인 친구 한 명은 이를 냉소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니그로들”이라고 표현했다.
2025년 하퍼는 베이츠 교수직에서 사임했다. 결국 그를 상아탑에서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워크식 짐 크로’도 아니었고 자신이 ‘구색 맞추기용 흑인 교수’로 이용된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등교육 전체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파산했다는 총체적인 인식이었다.
그는 대학의 연례 ‘섹스 위크(Sex Week)’를 알리는 포스터를 보고 자신이 느낀 바를 이렇게 말한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그 포스터에서 이 대학의 모든 잘못된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를 보았을 것이다. 이상한 헛짓거리에 낭비되는 돈,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관료들이 조직하는 행사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베이츠가 무엇이던가? 위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념적 자위 행위에 몰두하는 곳이 아니던가? 적어도 일주일 동안만큼은 우리는 그것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었다.
사임한 뒤 하퍼는 RPPC 과목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전한다. 이른바 대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이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대학 지도부의 핵심적 야망이었으며, 많은 교수도 이를 열렬히 지지했다. 그러나 2025년 11월, 트럼프 행정부가 고등교육 기관들에 DEI 정책을 포기하라고 압박하자 대학 지도부는 교수들에게 RPPC 시행을 중단하는 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권고했다.
하퍼는 이 소식을 들으면 자신이 기뻐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RPPC가 무의미하고, 실행 불가능하며, 미친 계획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실망감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마지막 증거가 또 하나 나타난 셈이었다.”
그는 베이츠의 초창기 학생 한 명을 떠올린다. 베이츠칼리지는 1855년 노예제 폐지론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이 학생은 북군을 위해 싸우기 위해 대학을 떠났다.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그는 리틀 라운드 톱(Little Round Top)을 내려가 총검 돌격을 이끌었으며, “진격해 오는 남부연합군의 아가리 속으로” 돌진했다.
그러고 나서 하퍼는 자신의 옛 동료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바로 그 대학이 이제는 교수진과 행정가들이 숨 가쁘게, 진지하게, 그리고 과시적으로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교육과정 개편 하나조차 지켜낼 최소한의 기개를 찾아내지 못했다.”
고등교육을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여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하퍼가 겪었고 이제는 경멸하게 된 현실은 몇몇 급진적인 교수나 활동가 학생들의 비밀 집단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하퍼의 설명에 따르면,
“캠퍼스에서 가장 극심한 인종 문제에 대한 강박적 집착의 근원이 고위 지도부였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고위 지도자들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곧바로 자신들이 쳐놓은 천막을 접어버렸다. 나는 비슷한 비겁함이 케임브리지를 비롯해 오염된 고등교육의 지형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기꺼이 생각한다.
우리의 너무나 많은 기관들이 ‘가슴 없는 인간들(men without chests)’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