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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68] 친절한 이웃 철학자

2026-09-21 06:07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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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 라이보비츠 Liel Leibovitz is editor at large for Tablet Magazine and senior research fellow at the Hudson Institute.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가끔씩 인간 조건이라는 수수께끼의 덤불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가장 뛰어난 정신들을 사로잡아 온 질문들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는 예술 작품이 등장한다. 『일리아스』가 그랬다. 『햄릿』이 그랬다. 『돈키호테』가 그랬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도 그렇다. 정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마블 슈퍼히어로 서사의 최신작은 역대 최고 흥행작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연예 매체들은 이 영화가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8억 달러 흥행 수입을 돌파했다고 흥분해서 보도했다) 가장 영혼이 깃든 작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고, 이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는 문제다. 철학자들이 즐겨 ‘타인의 마음 문제(problem of other minds)’라고 부르는 난제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주변의 사람들(슈퍼마켓 계산원, 우리 도시의 시장, 두 번 건너뛴 사촌, 그 누구든 모든 사람)이 실제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그들이 단지 외로움이나 지루함을 두려워한 나머지 우리가 만들어 낸 환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때때로 철학자들이 자기 머릿속에 너무 오래 갇혀 산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수 세기 동안 서양 사상의 중심에 놓여 있었으며, 르네 데카르트에서 존 스튜어트 밀, 버트런드 러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실처럼 이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은 이들이 사이버 공간의 메마르고 육체성 없는 플랫폼으로 물러나고 있는 지금, 타인의 마음 문제는 시시각각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거칠게 말하면 문제는 이렇다.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상호작용을 온라인에서 수행하게 되면서, 누가(혹은 무엇이) 우리에게 트윗을 보내고, 게시물을 올리고, 이메일을 보내고, 메시지에 답하고 있는지 실제로 알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전부터 상황은 이미 충분히 좋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은 두 마리 개 중 한 마리가 다른 개에게 “인터넷에서는 아무도 네가 개인지 모른다”고 안심시키는 《뉴요커》의 유명한 만평을 떠올려 보라.

그 만평은 1993년에 발표되었다. 클로드와 챗GPT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대화를 나누기 훨씬 전의 일이다. 오늘날 그러한 대화는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에게, 창조주께서 인식 능력이라는 선물을 주신 살아 있는 다른 인간과 나누는 대화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당혹하고 두려워진 우리는 대개 두 극단 가운데 하나로 되돌아가곤 한다. 첫 번째는 유아론(solipsism)이다. 우리 손끝에는 수많은 디지털 오락거리가 펼쳐져 있고, 우리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그 메뉴를 훑는다. 페이스북에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15분 동안 비디오게임을 한다.

우리는 반드시 한쪽 활동에는 어딘가에 실제 사람이 있어서 살과 뼈를 가진 손가락으로 우리에게 답을 입력하고 있고, 다른 활동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 낸 아바타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픽셀로 이루어진 이 광대한 세계 전체가 단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면, 또 다른 소일거리를 집어 들어 자신을 즐겁게 한다.

그 다음에는 유아론의 정반대편에 있는 텔레파시가 있다.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두렵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완벽하고 일관되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 소통할 수 있겠는가? 내가 고통스럽다고 말할 때 당신이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고통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관념이 크게 다르다면 (한 사람은 발가락을 찧고는 통곡하고, 다른 사람은 채소를 썰다 손가락을 베어도 얼굴만 찡그린다면) 도대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 타인의 마음이라는 혼돈 속으로, 사랑받는 거미줄 사나이 스파이더맨이 날아든다.

스파이더맨의 이전 모험담들을 요약할 필요는 없다. 이번 작품을 즐기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이것뿐이다. 붉고 푸른 스판덱스 복장을 입은 젊은이 피터 파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우도록 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네드와 사랑하는 MJ는 이제 동네 구멍가게에서 그를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한다.

요컨대 스파이더맨은 궁극적인 유아론자가 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비서 E.V.하고만 대화한다. E.V.는 그의 첨단 장비들을 전투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그리고 그의 외로움은 문자 그대로 그를 죽이고 있다. 영화가 시작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가 더 이상 다른 인간들과 의미 있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인간 절반, 거미 절반인 그의 섬세한 DNA 균형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이제 완전히 거미 쪽으로 변해 간다. 그의 눈은 검게 변해 거미의 눈처럼 되고, 유머와 품위는 동물적인 분노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는 더 이상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아니다. 뉴욕이라는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홀로 지배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싸우는 또 하나의 포식자가 되어 간다.

이 변화는 상냥한 파커를 공포에 빠뜨린다. 그는 저녁마다 혼자 앉아 MJ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를 바라본다. 언젠가 그들이 한때 서로 사랑했음을 말할 용기가 생기면 건네주려는 편지다. 그런 그에게 진 그레이가 곁에 있어 이 침체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녀를 기억하는가? 아마도 엑스맨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마블이 초능력을 지닌 ‘돌연변이’ 청소년들을 다룬 사랑받는 영화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려 준비하면서, 세월이 지나도 즐거울 만한 멋진 크로스오버를 선사한다. 그레이는 텔레파시 능력자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각을 장악한 이들을 통제할 수도 있다.

스파이더맨이 자기만의 세계 속에 홀로 존재한다면, 그레이의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 있다. 영화의 시각적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그녀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옮겨 다니면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안무를 보는 것이다. 그녀의 불운한 희생자들은 자기 몸과 두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해한다.

여덟 살이 넘었다면,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스파이더맨은—그보다 앞선 또 하나의 유명한 슈퍼히어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처럼—‘사적 언어(private language)’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비트겐슈타인이 가장 유명한 사고실험 가운데 하나에서 제안했듯이, 모든 사람이 상자 하나씩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 ‘딱정벌레’라고 불리는 무엇인가를 넣어 둔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상자의 주인 이외에는 누구도 그 상자를 열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은 ‘딱정벌레’라는 말이 ‘상자 안에 있는 것’을 뜻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그 소유자에게만 보이는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심지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자 속의 딱정벌레는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는 뇌 속의 생각처럼, 우리가 ‘언어’라고 부르는 것에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언어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이 세상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해 주는 도구다. 오스트리아 철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돌릴 수는 있지만 그것과 함께 움직이는 다른 아무것도 없는 바퀴는 기계 장치의 일부가 아니다.”

스파이더맨은 여러 닌자들과 싸우고, 인크레더블 헐크와 맞붙으며, 사악한 정부기관과 싸우고, 자기 자신의 호르몬과 씨름하고 나서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거기에 도달한다. 그리고 늙은 루트비히와 그의 사상을 일부러 찾아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의 젊은 팬들도 같은 철학적 여정을 따라가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는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진정으로 감동적인 이타적 희생의 행위로 끝난다. 사랑받는 우리의 슈퍼히어로는 다시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교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 생각을 나누고, 때로는 자기 자신까지 내어 준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철학적 교훈이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Cogito ergo sum”, 곧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놓고 시시콜콜 따지는 일은 철학자들과 슈퍼히어로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는 결함투성이인 바로 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공동체가 없으면 시들어 간다. 우리는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믿고자 간절히 갈망한다. 그리고 그 필요는 우리가 자기만의 사적 세계 밖으로 나와, 가장 두렵지만 동시에 가장 소중한 존재—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한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스파이더맨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발견한다. 사랑, 공동체,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무엇인가를.

인터넷에 중독되고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그의 팬들 가운데 단 몇 사람이라도 같은 것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진정 위대하고 중요한 예술작품으로 자리할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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