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 미국에는 선거가 있다. 중국에는 국민이 국가 최고지도자를 직접 선택하는 경쟁적 선거가 없다. 이 단순한 차이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체제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신뢰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가장 민감한 지점 가운데 하나 역시 ‘선거’다.
선거가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선거를 권력이 어떻게 이용하고, 정치세력이 얼마나 책임 있게 받아들이며, 국민이 얼마나 깨어 있는 의식으로 감시하느냐가 문제다. 민주주의는 투표함 하나를 설치했다고 완성되는 제도가 아니다. 공정한 절차와 자유로운 언론, 법치, 권력에 대한 견제,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는 정치문화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 틈을 전체주의 국가들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중국 공산당 체제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갈등과 혼란을 부각하며 자신들의 정치체제가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민주주의에서는 선거 때마다 사회가 갈라지고 정책이 흔들리지만, 자신들은 장기 계획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소음만 보고 자유의 가치를 보지 않는 주장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시끄러운 것은 국민에게 말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비판할 수 있고, 정책에 반대할 수 있으며, 잘못된 지도자를 선거를 통해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국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권력자를 선택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반대로 전체주의 체제의 ‘효율성’에는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가. 잘못된 정책을 누가 막을 수 있는가. 최고지도자의 판단이 틀렸을 때 누가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가. 국민이 정권을 바꾸고 싶을 때 어떤 제도적 방법이 존재하는가.
민주주의의 약점은 밖으로 드러난다. 전체주의의 약점은 안으로 감춰진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때때로 혼란스러워 보이고 전체주의는 안정돼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세계 최강대국 가운데 하나를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했다. 양국은 무역과 인공지능, 전략적 경쟁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논의했지만 정상회담은 거대한 경쟁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상들의 표정이 아니다. 더 긴 역사적 경쟁이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역시 완벽하지 않다. 선거제도를 둘러싼 갈등도 있고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도 존재한다. 민주주의를 악용하려는 권력과 정치세력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는 끊임없는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개인의 책임, 시민의 용기, 자유언론, 독립된 사법부, 공정한 선거, 그리고 권력에 대한 의심과 견제가 하루하루 쌓여 유지되는 노력의 산물이다.
중국의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의 혼란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주장한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민주주의를 더 민주주의답게 즉, 자유민주주의로 만드는 것이다. 선거를 더 투명하게 하고, 권력을 더 엄격하게 견제하며, 거짓과 선동에 흔들리지 않는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느 지도자의 여유로운 표정이나 한 차례 정상회담의 성패로 결정되지 않는다. 결국 결정하는 것은 자유를 누리는 시민들이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얼마나 감당하느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저절로 승리하지 않는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