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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74] 국가란 무엇인가?

2026-09-27 07:5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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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J. 레이하트 Peter J. Leithart is president of the Theopolis Institute, Birmingham, Alabama. He posts regularly at his Substack, Notes from Beth-Elim 소장


우리는 정치 세계가 거의 200개의 서로 구별되는 국가들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각 국가는 지도에 표시할 수 있는 경계를 가지고 있고, 통일된 정치 체제와 공통의 언어와 문화를 지니며, 자신들이 하나의 국가라는 공통된 의식도 갖고 있다고 여긴다. 세부적으로는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우리는 이들이 결국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가정한다.

맨해튼 이스트강을 내려다보는 푸른빛의 오벨리스크로 상징되는 이러한 세계상은 세상을 대략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쓸모가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파고들어도 그것은 곧 해체되기 시작한다.

“국가”가 무엇이든 간에, 국가는 언제나 다른 정치적 형태들과 공존해 왔다. 고대 이집트는 1천5백 년 동안 아프리카 북동부를 지배했고, 때로는 그 세력을 레반트 지역까지 확대했다.

고대 후기에는 여러 제국들이 동부 지중해 전역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다. 아즈텍과 마야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고, 중국 제국은 극동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현대 민족주의 자체가 제국주의의 사생아와도 같다.

19세기에는 민족주의가 여러 민족들로 하여금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도록 고무했고, 20세기의 민족주의 운동은 옛 유럽 식민지들에서 크게 확산되었다. 냉전 시기에는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어느 한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모였고, 자발적이든 아니든 서로 맞선 두 강대국의 대결에서 대리자 역할을 했다.

국가처럼 보이는 정치 단위들이 실제로는 국가가 아닌 경우도 있다. 지도는 아프가니스탄을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현혹하지만,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은 여러 씨족과 대략 열두 개의 주요 집단, 그리고 수백 개의 개별 부족들이 뒤섞인 모자이크와 같다. 그 어느 집단도 전체 인구의 50%를 차지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식민 지배 세력들은 자신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국경을 그었고, 그 과정에서 부족들의 전통적 영역을 가로질렀다. 마사이족은 케냐와 탄자니아 양쪽에 살고 있고, 소말리족은 동아프리카의 다섯 나라에 나뉘어 있으며, 말링케족은 서아프리카의 여섯 나라에 걸쳐 분포한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국가”인가?

국가는 흔히 제국과 대비하여 정의되지만, 그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다. 대부분의 민족주의 이론가들은 공통 언어를 국가의 핵심적 특징으로 꼽지만, 국가와 언어 사이에는 단순한 일대일 대응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58개국이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있으며, 그 밖의 수많은 지역에서도 영어가 널리 사용된다.

세계 국가의 약 절반은 둘 이상의 공용어를 갖고 있다. 언어와 문화가 통일되어 있는 경우에도, 그 통일이 강제로 이루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러시아어가 모든 러시아인의 언어가 된 것은 19세기 차르들이 러시아화 정책을 추진하며 소수 민족들에게 러시아어를 받아들이고, 러시아 정교회에 가입하며, 러시아 관습을 따르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종종 제국처럼 행동하며 국경 너머로 힘을 투사한다. 무역은 그 동력 가운데 하나다. 제퍼슨 행정부 시절 미국 해병대는 지중해 해운을 방해하던 바르바리 해적들을 진압하기 위해 “트리폴리 해안”으로 갔다. 국경 지대 역시 관심을 요구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경계 너머를 바라볼 수 없다면 경계 자체를 식별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경 반대편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국경을 통제할 수 없다. 미국은 국경 밖의 혼란이 자국에 영향을 미칠 때, 단지 자국 국경 안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이 모든 말이 현학적인 트집 잡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명료함은 현명한 정치적 행동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것들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모두를 하나의 개념적 바구니에 집어넣을 수 없다. 우리는 정치적 유형들에 대해 보다 정교한 분류 체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이론적 문제는 즉각적인 현실적 효과를 낳는다. “국가”라는 범주가 모호하다면, “민족주의적” 정책 역시 개념적으로 모호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난히 일관성이 없지만, 만일 그 행정부가 “국익”을 추구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일관되게 시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고 이민을 대폭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민족주의적 정책처럼 보인다. 그들은 우리의 법을 위반했으므로 추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멕시코인이나 과테말라인이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경제의 또 다른 수준에서는 인도인이나 중국인보다 미국인을 우선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이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술적 우위를 강화하기 위해 STEM, 곧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인도와 중국의 학생들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다른 국익의 모델들은 충돌한다. 그것들이 서로 다른 “국가”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문화적, 그리고 인종적 결속을 중시하고, 다른 한쪽은 국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한다.

외교 정책은 또 하나의 논쟁 지대다. 모든 병력을 본국으로 불러들이고, 해외 기지를 폐쇄하며, 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군사적 개입을 끝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우리 국가의 이익에 부합할까? 오래지 않아 우리는 또 다른 바르바리 해적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때때로 병력을 다시 파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철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확고한 ‘아메리카 퍼스트’ 지지자는 “그게 무슨 상관인가?”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지진의 충격이 결국 우리에게까지 되돌아와 우리를 흔드는 세계에서, 과연 우리는 나머지 세계를 무시할 여유가 있는가?

“국가”라는 것은 원칙에 입각한 일련의 정책을 만들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유연한 범주다. “국익”이라는 말은 다른 근거들에 따라 내려진 결정을 수사적으로 포장해 주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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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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