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가스페 반도(Gaspé Peninsula)의 북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132번 도로는 북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 하나를 선사한다. 왼편으로는 장대한 세인트로렌스강이 펼쳐져 있어, 마치 해안을 따라 운전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강 하구의 폭이 워낙 넓어 같은 퀘벡주에 속한 맞은편 강변이 종종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해안도로가 가스페만의 특별한 풍경까지 갖추고 있을까? 오른편에는 들쭉날쭉한 절벽이 솟아 있고, 그 너머로는 울창한 숲과 수정처럼 맑은 작은 호수들이 이어진다. 대서양을 향해 하구를 지나가는 고래를 찾아보는 일은 가스페 마을로 향하거나 강을 건너는 페리를 타는 여행에 또 하나의 모험을 더한다.
가톨릭 신자 방문객에게 가스페 반도는 강과 하구를 따라 자리한 마을들의 이름 때문에도 눈길을 끈다. 그 대다수가 성인들을 기리는 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뒤포르타주, 노트르담데네주, 생시몽, 생파비앵쉬르메르, 생트플라비, 생조제프드르파주, 생튈릭, 생트펠리시테, 생탄데몽 등이 그 예다. 이 해안 마을들 가운데 많은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높은 첨탑과 반짝이는 양철 지붕을 얹은 석조 성당이다. 이는 퀘벡이 한때, 그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까지 북미 대륙에서 가장 강렬하게 가톨릭적인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언한다.
나는 “말없이” 증언한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 성당들 가운데 문이 열려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사례가 생로슈데존네 마을의 생로슈 성당이다.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달려오면 두 개의 첨탑이 마치 방문객을 마을 안으로 초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성당이 매일 개방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음에도, 지난 8월 25일에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더욱이 유서 깊은 사제관이 커피와 페이스트리를 파는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도 (아몬드 크루아상은 훌륭했다는 점은 밝혀둘 만하다) 활기찬 본당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았다.
주말 미사 시간표는커녕 평일 미사 시간표조차 건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방문객은 결국 성당의 외관만 감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부에는 기도와 묵상에 더없이 적합한, 회랑이 딸린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직접 들어가 볼 기회는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가톨릭적이던 퀘벡이 내가 살아오는 동안 북극에서 티에라델푸에고에 이르는 지역 가운데 어쩌면 가장 종교적으로 메마른 공간이 되어 버렸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번 선거의 계절에 곱씹어볼 만하다. 옛 사제관이었던 카페와 잠긴 성당 사이에는 마을의 역사를 소개하는 포스터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 가운데 흐릿한 흑백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1930년 정치 집회”라는 제목의 사진에는 포드의 모델 T와 모델 A 수십 대, 그리고 본당의 거대한 예수 성심상 앞에 모인 백여 명가량의 주민들이 보인다. 이들은 본당 회관 현관에서 연설하는 공직 후보자로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지역 사제들이 이에 대해 논평하고 있었다. 이런 추측은 1930년 당시 퀘벡 가톨릭교회가 주정부와 사실상 한 몸처럼 밀착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뒷받침된다.
당시 교회는 주정부를 대신해 학교와 병원, 사회복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오래된 체제는 이후 교회와 국민연합당 사이의 긴밀한 동맹으로 변모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퀘벡의 이른바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이 일어나 교회와 국가의 밀접한 유대를 산산이 깨뜨렸다. 퀘벡의 교회는 그 이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 오래된 사진은 내게 특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한 달 전, 폴란드 남동부에서 특정 정당 후보의 강연과 주일미사 참석을 지역 주민들에게 권하는 광고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광고판에는 지역 사제와 정치인의 초상까지 나란히 실려 있었다. 그 광고판들을 지나치며 나는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이, 교회가 당파적 정치 행위자로 타락한 이런 모습을 보고 놀라움과 탄식 속에 고개를 저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는 바로 그가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일부 형태를 그토록 날카롭게 비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가 되는 정당의 이념적 성향이 어떠하든, 정당과의 당파적 동맹은 교회에 죽음을 가져온다.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약 300년 동안 퀘벡 사회의 특징이었던, 교회가 국가 권력과 맺었던 식의 동맹 역시 마찬가지다.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내가 가스페에서 본 현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또한 폴란드 주교들은 지역 성당을 (하물며 주일미사를!) 당파적 정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가톨릭 유권자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후보자가 달고 있는 정당의 꼬리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과 정책을 기준으로 판단하자.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