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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선 요새화 공사 현장 시찰하고 있는 김여정 |
바이낸스에서 발생한 8조원대 가상자산 해킹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지목되자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이 또다시 미국 탓을 들고나왔다.
북한을 겨냥한 수사 발표가 “정치적 도발”이자 “주권침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시된 담화에는 수사 내용을 뒤집을 구체적인 반증이 없다. 의혹에는 답하지 않고 상대를 비난하며 외교적 위협까지 보태는 태도는 책임 있는 해명과 거리가 멀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해킹 활동인 ‘트레이더트레이터’와 연관 짓고, 탈취 자산의 이동에 사용됐다고 밝힌 가상자산 주소들을 공개했다. 관련 업계에는 해당 자금의 거래 차단도 요청했다. 물론 수사기관의 발표 역시 증거에 따라 검증받아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자금 추적 내용이 제시된 사안을 통째로 “황당무계한 낭설”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반박할 수 없다. 반박하려면 어떤 분석이 왜 잘못됐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김여정은 미국이 몰수한 가상자산으로 전략비축을 추진한다는 점을 끌어와, 오히려 미국이 해킹의 배후일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까지 내놓았다. 회수한 자산을 보유할 수 있다는 이유로 회수 주체를 절도범으로 의심하라는 억지다. 몰수 자산의 운용 정책과 범죄 실행의 증거 사이에는 메워지지 않은 논리적 간극이 있다. 더욱이 미국의 관련 행정명령은 확인된 범죄 피해자에게 자산을 반환할 수 있는 예외도 명시하고 있다. 회수금이 미국에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이런 규정마저 외면한다.
사건의 본질은 막대한 타인의 자산이 탈취됐다는 데 있다. 그런데 김여정의 담화는 피해와 진상 규명보다 북한 정권의 체면을 앞세운다. 국가의 존엄은 범죄 의혹에 대한 질문을 금지하는 방패가 될 수 없다. 결백을 주장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확인 가능한 설명이 따라야 한다. 목소리를 높인다고 자금의 이동 경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재고해볼 문제들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도 부적절하다. 해킹 의혹을 추궁하면 외교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압박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해서 사이버범죄 수사를 접거나 책임 규명을 유보할 수는 없다. 대화를 원한다면 상대의 수사와 문제 제기를 위협으로 막으려는 태도부터 거둬야 한다. 이런 담화는 북한 스스로 외교적 신뢰를 깎아내리는 일이다.
국제사회의 대응은 구호보다 치밀해야 한다. 한국과 우방국은 수사 정보와 자금 추적 결과를 공유하고, 거래소 등과 협력해 탈취 자산의 세탁을 차단해야 한다. 책임 소재는 검증 가능한 증거로 밝히고, 확인된 불법 행위에는 일관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외교적 기대 때문에 수사를 흐리거나, 강경한 담화 때문에 추적을 늦출 이유는 없다.
북한이 억울하다면 수사 결과의 허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진상 규명에 협조하면 된다. 근거 없는 역공과 관계 악화 경고는 결백의 증명이 될 수 없다. 부인하고, 남 탓하고, 끝내 으름장을 놓는 오리발이 거듭될수록 북한의 말은 신뢰를 잃는다.
김여정에게 필요한 것은 더 거친 담화가 아니라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