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수행은 역동적인 과정이다. 군사적 성공과 실패는 분쟁의 상황을 변화시킨다. 이는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란 신정체제에 맞선 국내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혁명수비대는 중동 전역의 목표물을 타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 수송을 차단할 수 있는 회복력과 능력을 보여주었다.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우리의 도덕적 판단 역시 검증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정당한 전쟁(정전론)의 한 기준은 ‘성공 가능성’이다. 헛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정당한 목적을 달성할 희망 없이 집단적 폭력의 악을 초래한다. 설령 대의가 정당하다 하더라도, 지도자들은 성공 가능성을 신중히 따져야 한다. 전쟁 수행에 대한 이러한 도덕적 제약은 정전론이 냉철한 현실주의와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군사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국가이익 개념은 없다.
성공 가능성이라는 기준은 전쟁의 시작뿐 아니라, 전쟁 수행 방식과 목표 설정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최근 몇 주간의 상황은 이란이 중대한 위협이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주장을 입증하였다.
테헤란은 인도양에 위치한 미·영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에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하나는 비행 중 실패했고, 다른 하나는 미사일 방어체계에 의해 요격되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디에고 가르시아는 테헤란에서 약 2,500마일 떨어져 있으며, 이는 로마까지의 거리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3월 초, 이란 외무장관은 자국이 미사일 사거리를 1,250마일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위협으로 느껴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주장은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이란 정권이 초래하는 위험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논평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 정부가 이란의 결의를 과소평가하고 결정적 승리를 확보할 능력을 과대평가했다고 지적한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동맹국 방어에 필요한 첨단 요격 미사일이 고갈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전쟁 기획자들은 이란이 석유 수송을 차단하거나 아랍에미리트 등 다른 목표를 공격해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이란을 제압할 수 없고, 지속되는 적대행위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다면, 도덕적 이성은 협상을 요구한다. 트럼프가 시사하고 이란이 부인한 것처럼, 이미 협상이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트럼프가 위협한 공격이 연기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이란은 계속해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워싱턴과 테헤란은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현재 상황은 위험하다. 2025년 6월의 대치와 달리, 이번에는 이란이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고 지역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을 투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곧 트럼프가 시작했지만 끝낼 수 없는 전쟁이 될 것이라는 도박이다.
이란의 도박은 어리석지 않다.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은 미국 내 여론이 트럼프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미국 국민은 ‘지상군 투입’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 또한 테헤란은 고유가로 타격을 입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이 전쟁 종식을 압박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걸프 국가들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전쟁은 이 지역을 글로벌 자본의 안전지대로 보이게 했던 이미지를 훼손했다. 이란은 부유한 세계가 결정적 전쟁 수행에 필요한 희생보다 안락함을 선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이들을 부러워할 수 없다.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란이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세계적 삼각 구도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중동 분쟁은 다층적인 경쟁의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은 신중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우리의 도덕적·전략적 상상력에 왜곡된 빛을 비춘다. 대승의 기억은 무한한 힘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 히틀러를 절대악의 화신으로 보는 이미지는 우리를 이원론적 사고로 유혹한다. 만약 이란을 ‘죽음의 숭배 집단’으로 규정하고 지도자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배와 파괴를 추구한다고 믿는다면, 이 분쟁은 세계사적 전쟁으로 격상되어 전면전과 총력전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요구했던 ‘무조건 항복’ 노선을 따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경우 정전론과 양립하기 어렵다. 나는 트럼프가 이러한 사고방식을 버릴 만큼 현명하기를—혹은 역사에 무지하기를—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총력전을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란과의 협상이 혁명수비대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는 경고는 옳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테헤란은 재무장하고 핵무기를 추구하며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가 그것뿐만은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는 세력에 자국 경제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은 자국 도시가 곧 이란 미사일 사거리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아랍 산유국들은 이란이 자신들을 공격 대상에서 제외해 주던 암묵적 합의를 깨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인식이 냉정해졌고, 중동과 전 세계에서 새로운 결의가 나타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정전론과 정치적 현실주의는 ‘성공 가능성’이라는 기준에서 만난다. 사건의 흐름과 자원, 그리고 여론이 달성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목표를 향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도덕적이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정의와 신중함은 때로 타협과 양보를 요구한다.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은 인내일 때가 있다. 시간은 현명하게 활용하는 이들의 편에 서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