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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이란의 종교지도자는 분명 국가 최고 권력자로 불린다. 그러나 정작 위기의 순간마다 그 존재는 실체보다 상징에 가깝다.
국민 앞에 책임 있게 서지 않고, 세계 앞에 공개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며, 이란 사회가 겪는 고통과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의문 앞에서도 침묵과 은둔으로 일관한다면, 그 권력은 살아 있는 정치 지도력이라기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신비화된 장치에 불과하다.
현재 이란의 문제는 바로 그 공백을 혁명수비대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 체제의 실제 작동 원리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가 아니라 무장 권력, 정보 통제, 공포 정치, 선전 조직에 의해 움직인다. 최고지도자의 이름은 남아 있지만, 그 이름을 앞세워 국내에서는 국민을 억압하고, 국외에서는 세계 여론을 조작하는 세력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보이지 않는 권위의 그림자를 이용해 책임은 감추고 권력은 행사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일부 세계 언론의 태도다. 언론은 본래 권력을 감시하고, 억압받는 국민의 목소리를 전하며, 선전과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적지 않은 언론이 이란 정권이 흘리는 주장과 혁명수비대가 설계한 프레임을 거의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
이란 정권이 “우리는 공격받고 있다”고 말하면 그것을 제목으로 삼고, “핵은 평화적 목적”이라고 말하면 그것을 해명처럼 전달하며, “서방의 제재가 문제”라고 말하면 이란 국민을 억압해온 내부 권력의 책임은 희미하게 만든다. 이 얼마나 혁명수비대가 가지고 놀기 좋은 구조인가. 최고지도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책임 있는 설명도 필요 없다. 대신 정권의 대변인, 군부의 선전기관, 외곽의 여론 조작망이 메시지를 던지면 세계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그러면 이란 정권은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도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고, 국내 국민에게는 “세계도 우리를 인정한다”고 선전할 수 있다. 독재 권력이 가장 바라는 외부 환경이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세계의 언론이 그 거짓말을 대신 말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란의 본질은 선전 문구가 아니라 감옥과 거리에서 드러난다.
히잡을 강요받는 여성들, 처형의 공포 속에 놓인 정치범들, 자유를 외치다 끌려간 청년들, 정권 비판 한마디로 가족까지 위협받는 시민들이야말로 이란의 진짜 현실이다. 이들의 입은 막혀 있는데, 혁명수비대의 주장은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이 된다면 그것은 언론의 중대한 실패다. 언론이 권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권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진실은 가장 먼저 희생된다.
세계 언론은 이제 물어야 한다. 자신들이 정말 이란 국민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란 정권의 계산된 언어를 번역해 퍼뜨리고 있는가. 최고지도자의 실체 없는 권위와 혁명수비대의 강압적 통치 구조를 제대로 파헤치지 않은 채, 정권의 주장만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전달하는 것은 공정 보도가 아니다. 그것은 독재 선전의 세련된 포장일 뿐이다. 이란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의 해명이 아니라 자유다.
국제사회에 필요한 것은 혁명수비대의 프레임이 아니라 진실이다. 세계 언론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권위와 혁명수비대의 선전술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언론이 진실의 편에 서지 못하면, 독재는 언제든 언론의 입을 빌려 자신을 정당화한다.
지금 세계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란 정권의 말을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은 감옥과 처형장과 검열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혁명수비대의 입이 된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이란 국민의 빼앗긴 목소리를 세계 앞에 되돌려주어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