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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올해부터 제2차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강령을 집행하면서 이른바 “학생들의 소질과 개성을 키우는 선택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새 교육강령의 핵심이 선택교육과정에 있다며, 고급중학교와 기술고급중학교 단계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에 따라 여러 분야의 교육을 받고, 중등교육 단계에서 한 가지 이상의 기술기능을 갖추게 된다고 선전한다.
겉으로만 보면 이는 현대 교육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존중하고, 이론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실천형·창조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구호는 어느 나라 교육정책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에서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문제는 “선택”이라는 말이 실제로 학생 개인의 자유로운 진로 선택을 의미하느냐는 점이다.
북한 교육의 본질은 여전히 개인의 성장보다 체제의 필요에 맞춰져 있다. 학생의 소질과 개성을 말하지만, 그 소질과 개성은 국가와 당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인정된다.
자유로운 질문, 다양한 가치관, 비판적 사고, 개인의 직업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선택교육”은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 되기 어렵다. 결국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국가가 어떤 인력을 필요로 하는가가 우선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등교육단계에서 한 가지 이상의 기술기능 소유”라는 표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학생들에게 실용적 능력을 길러준다는 긍정적 의미로 포장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을 조기에 산업현장과 국가동원 체계에 편입시키려는 의도와도 연결될 수 있다.
북한 경제가 장기간의 제재, 기술 낙후,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학교는 개인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부족한 노동력을 준비시키는 예비 동원기관으로 작동할 위험이 있다.
북한이 말하는 “창조형, 실천형 인재” 역시 자유사회에서 말하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창조란 기존의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며, 때로는 권위에 도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 교육은 수령에 대한 충성, 당 정책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국가 이념의 반복 학습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창조성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체제가 요구하는 과업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에 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의 불평등이다. 북한은 모든 학생이 새 교육강령에 따라 “보다 우수한 교육”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북한 사회에서 교육 기회는 출신성분, 지역, 가정 배경, 권력과의 거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평양과 지방, 간부 자녀와 일반 주민 자녀, 핵심계층과 동요·적대계층 사이의 교육 격차는 쉽게 해소될 수 없다. 선택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특권층 학생에게는 좋은 진로가, 일반 학생에게는 노동력 공급을 위한 기술훈련이 배정되는 이중구조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교육은 학생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식 교육에서 학생은 독립적 인격체라기보다 “당과 국가가 요구하는 인재”로 규정된다. 개성은 체제에 유용할 때만 인정되고, 소질은 국가계획에 맞을 때만 장려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학생의 꿈도, 재능도, 진로도 온전히 개인의 것이 되기 어렵다.
북한 매체가 강조하는 선택교육은 언어만 놓고 보면 미래지향적이다. 하지만 그 언어가 놓인 체제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자유 없는 선택, 비판 없는 창조, 개인 없는 개성은 결국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기능 하나를 더 익히는 것만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할 자유, 자신의 길을 선택할 권리,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먼저다.
북한의 새 교육강령은 “학생들의 소질과 개성”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학생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바로 그 침묵이 북한식 선택교육의 한계를 보여준다.
선택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을 체제 유지와 경제 동원의 부품으로 길러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육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국가 동원일 뿐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