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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전국적인 범위에서 구급의료봉사지휘체계가 운영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중앙구급지휘소와 각 도 구급지휘소를 통해 도·시·군 치료예방기관들의 구급의료봉사를 통일적으로 장악·지휘하고 있으며, 최근 남포시에서는 보건성 주최로 전국적인 ‘보여주기사업’까지 진행됐다는 내용이다.
겉으로만 보면 북한 보건의료 체계가 응급환자 이송과 치료 연계를 체계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보도는 늘 그렇듯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피해간다. 실제 주민들이 위급한 순간에 구급차를 부를 수 있는가, 병원까지 제때 이송될 수 있는가, 병원에는 의약품과 장비가 갖추어져 있는가, 의료진은 정상적으로 진료할 여건을 보장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북한 매체는 “인민의 생명건강을 지켜낸다”고 강조했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의료 현실은 선전 문구와 거리가 멀다. 북한의 의료체계는 형식상 무상치료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의약품 부족, 낙후된 의료장비, 전력난, 교통난, 의료기관 간 격차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구급지휘소가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응급의료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응급의료의 핵심은 지휘체계의 명칭이 아니라, 구급차의 실제 가동률, 연료 공급, 통신망, 응급장비, 병원 수용 능력, 약품 비축량이다.
이번 보도에서 특히 눈에 띄는 표현은 ‘보여주기사업’이다. 남포시를 “앞선 단위”로 내세워 각 도 보건지도일군과 구급지휘소 성원들에게 경험을 일반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 생명과 직결된 응급의료가 왜 ‘보여주기’ 방식으로 선전되어야 하는가. 응급의료는 행사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환자가 쓰러진 골목, 교통이 끊긴 농촌, 전기가 부족한 병원, 약품을 구하지 못하는 가족의 절박한 현실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구급요청이 들어오면 구급차 가동상태를 장악하고 여러 구급초소를 전개해 짧은 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북한 의료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응급차량의 상시 대기, 통신 접수, 현장 출동, 병원 이송은 특별히 선전할 사안이 아니라 기본 행정이다. 이를 대대적으로 ‘성과’로 소개한다는 것은 그동안 이러한 기본 기능조차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북한 보건의료가 주민의 생명권보다 체제의 통제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도는 구급의료봉사망이 “통일적으로 장악지휘”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중앙의 통제만이 아니다.
지역 병원과 현장 의료진이 환자 상태에 따라 즉각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율성, 필요한 약품과 장비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는 공급망, 주민이 비용과 신분 부담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이 핵심이다. 그러나 북한식 지휘체계는 주민의 접근권보다 상부 보고와 행정 통제를 우선할 위험이 크다.
응급의료는 한 사회의 가장 정직한 민낯이다. 평양의 대형 병원이나 시범 도시의 ‘보여주기사업’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주민이 한밤중에 쓰러졌을 때 국가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실제적으로 대응하는가가 기준이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인민의 생명건강을 말하려면 선전 행사를 늘릴 것이 아니라 의료 현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역별 구급차 보유 현황, 평균 출동 시간, 응급환자 사망률, 의약품 공급 실태, 병원 전력 공급 상황부터 밝혀야 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군수공업에는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면서도 주민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 인프라에는 만성적 결핍을 방치해 왔다. 그 결과 주민들은 병원보다 장마당 약품에 의존하고, 치료보다 뇌물과 연줄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전국적인 구급의료봉사지휘체계”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생명을 살리는 체계는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급차가 실제로 달려야 하고, 의사가 실제로 치료해야 하며, 병원에는 전기와 약품과 장비가 있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겠다면, 보여주기식 선전이 아니라 군사 우선 정책을 멈추고 보건의료에 국가 자원을 돌려야 한다.
응급의료는 체제 홍보의 무대가 아니라, 주민 생명권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