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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통령 “대만 분쟁 시 개입 불가피”

2026-05-20 22:09 | 입력 : 안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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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스 “지리와 자국민 보호 때문에 선택지 없다”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의 페르디난트 마르코스 2세 대통령이 대만 유사시 필리핀이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면서 동아시아 안보 지형이 빠르게 긴장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만은 필리핀과 매우 가깝고, 약 20만 명의 필리핀 국민이 대만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있다”며 “필리핀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필리핀 북부 루손섬과 대만 남단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며, 대만해협에서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난민, 자국민 철수, 미군 기지 사용, 해상교통 차단, 남중국해 긴장 고조 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마르코스는 “지도만 보아도 필리핀 북부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은 공식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도 이번 인터뷰에서 필리핀이 대만 문제와 관련한 전쟁에 개입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고수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지리적 현실과 자국민 보호 문제 때문에 대만 유사시 필리핀이 완전히 중립적 위치에 머무르기는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 궈자쿤 대변인은 5월 19일 정례브리핑에서 필리핀이 “약속을 지키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실제 행동으로 준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자국의 내정이자 주권 문제로 규정하며, 지리적 인접성이나 대만 내 필리핀 노동자 문제를 개입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발언은 필리핀·일본·미국의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나왔다. 최근 미국, 일본, 필리핀은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필리핀에 전투부대를 파견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일본은 필리핀에 지대함 미사일 수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으며, 이는 중국의 해양 팽창과 대만해협 긴장에 대응하는 지역 안보 협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의 회담에서 안보협력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일본이 방위장비 수출 규제를 완화하고, 대만 유사시 일본의 안보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필리핀은 일본이 실제로 어떤 수준의 행동을 준비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과 일본은 각각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양 압박을 경험하고 있어, 양국 협력은 단순한 양자관계를 넘어 ‘제1도련선’ 방어 구도와 연결되고 있다.

대만 문제는 미중관계의 핵심 뇌관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가 잘못 처리될 경우 미중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대만 독립을 공식 지지하지 않지만,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고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며 억지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중국과의 협상 카드처럼 언급하면서, 미국의 대만 방어 의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대만 유사시 전선이 대만해협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필리핀 북부, 일본 오키나와, 괌, 남중국해, 동중국해가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묶일 수 있다. 특히 필리핀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동맹국이며, 마르코스 정부 들어 미군의 필리핀 기지 접근권을 확대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들 기지가 “공격적 행동”에 사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혀왔지만, 대만 유사시 미군의 작전·후방·대피·감시 거점으로서 필리핀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마르코스 발언은 대만 문제가 더 이상 대만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워 주변국의 관여를 차단하려 하지만, 대만해협의 군사 충돌은 지리적으로 필리핀을, 조약상 미국을, 안보상 일본을 동시에 끌어들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대만해협은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 질서를 시험하는 핵심 무대가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 흐름을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 대만해협의 불안정은 반도체 공급망, 해상교통로, 한미일 안보협력, 주한미군 전략 운용, 북한의 오판 가능성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리핀 대통령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은 동아시아 모든 자유 진영 국가들이 직면한 현실을 압축한다. 대만의 위기는 곧 역내 질서의 위기이며, 그 파장은 한반도에도 예외 없이 밀려올 수 있다.

안·희·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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