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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장기간 중국에 거주하며 활동해 온 언론인 겸 정치평론가 토머스 파우켄 2세가 중국 정부를 위해 미등록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연방수사국 FBI에 체포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사건의 핵심은 그가 단순히 중국 관련 자문 업무를 한 것이 아니라, 중국 국가안전부와 연계된 인물들의 지시를 받아 미국 내 인맥을 접촉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정책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다.
미국 언론 보도와 법원 문서에 따르면 파우켄은 올해 2월 FBI에 체포됐으며, 3월 보석 신청이 기각된 뒤 현재까지 구금 상태에 있다. 그는 미국 법전 18 U.S.C. §951, 즉 외국 정부를 위해 미국 내에서 활동하면서 법무장관에게 사전 통보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조항은 외국 정부의 지휘나 통제를 받는 대리인이 사전 신고 없이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며, 위반 시 최대 10년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미국이 중국의 정보 수집 및 영향력 확대 활동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검찰이 일반적인 외국대리인등록법, 즉 FARA가 아니라 보다 형사적 성격이 강한 18 U.S.C. §951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사건의 무게가 작지 않다.
미국 법무부 설명에 따르면 §951은 외교관이 아닌 사람이 외국 정부 또는 외국 관리의 통제 아래 활동할 경우 법무장관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이다.
중국 정보기관 연계 인물과 접촉 의혹
FBI 특별요원 티모시 힐리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 따르면 파우켄은 최소 2019년부터 중국 국가안전부 MSS와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의 지시를 받아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 핵심 연락책으로 지목된 인물은 ‘캐시’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성으로, FBI는 이 인물이 중국 정보기관과 관련돼 있다고 보고 있다.
파우켄은 중국 측 연락책을 위해 미국 정치 상황과 정책 동향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FBI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가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전달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보고서들은 단순한 언론 논평이나 공개 칼럼 수준을 넘어,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참고자료 성격을 띤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더 심각한 대목은 파우켄이 중국 측의 요청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인물과 접촉하려 했다는 점이다. 법원 문서에서 이 인물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FBI는 해당 인물이 현재 미국 정부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우켄은 이 인물에게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전달했고, 이후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만나 SIM 카드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이 만남을 감시하고 있었으며, 파우켄이 해당 인물에게 중국 측과 협력해 매주 정책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제안했다고 보고 있다. 보수는 주당 1만 달러 수준으로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의 목적은 미국 정책에 영향을 주고, 중국 최고지도부가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80% 가능성” 발언이 드러낸 위험성
FBI 진술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파우켄이 해당 미국 정부 관련 인물이 중국에 기밀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을 “80%”로 봤다는 취지의 진술이다. 수사당국은 이 발언을 파우켄이 자신의 행위가 민감한 정보와 국가안보 문제에 관련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로 보고 있다.
파우켄 측 변호인 찰스 번햄은 사건의 성격을 낮추려 하고 있다. 그는 파우켄이 간첩 행위나 기밀정보 부적절 취급 혐의로 기소된 것은 아니며, 외국 정부를 위한 전문 업무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서류 절차를 마치지 않았다는 것이 현재 혐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적용한 법 조항과 FBI 진술서의 내용은 이 사건을 단순 행정절차 위반으로만 보기 어렵게 만든다. FARA는 외국 주체를 위한 로비나 홍보 활동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성격이 강한 반면, §951은 외국 정부의 지시 또는 통제 아래 이뤄지는 비공개 활동을 겨냥한다. 이는 정보 활동과 영향력 공작 사이의 회색지대를 다루는 법적 장치로 평가된다.
중국 관영매체 활동 경력도 주목
파우켄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언론 및 논평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톰 맥그리거’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으며, 중국국제방송, CCTV, CGTN, 신화사 등 중국 관영·국가통제 매체와 관련된 경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에는 미중 무역전쟁과 양국 관계를 다룬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주목점은 그의 가족 배경이다. 파우켄의 부친 톰 파우켄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고,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텍사스 공화당 의장을 지낸 미국 보수 정치권 인사다. FBI는 중국 측 인사들이 파우켄의 부친과 정치권 인맥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언론인의 등록 의무 위반 사건을 넘어, 중국이 미국 정치권 주변 인맥과 여론 형성 통로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중국의 영향력 공작, 언론·학계·정치권으로 확산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의 정보 활동과 영향력 공작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 왔다. 전통적인 간첩 활동뿐 아니라 학자, 기업인, 유학생, 언론인, 전직 관료, 민간 전문가 등을 활용해 정책 정보와 여론 환경에 접근하는 방식이 더 정교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파우켄 사건 역시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 FBI 진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중국 측은 공개 정보 분석을 가장한 보고서 작성, 미국 정부 인사 접근, 고액 보수 제공, 별도 통신수단 전달 등을 통해 정책 영향력 확보를 시도한 셈이다.
물론 파우켄은 아직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가 아니며, 모든 혐의는 법정에서 다퉈질 사안이다. 변호인도 이 사건이 전통적 의미의 간첩 사건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미국 수사당국이 그를 구금 상태로 재판에 넘기고, 일반 FARA가 아닌 §951을 적용했다는 점은 워싱턴이 이 사안을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자’라는 외피 뒤의 영향력 네트워크
이번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외국 정부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과 언론·분석·자문 활동의 경계는 어디인가. 또 자유사회는 외국 권위주의 국가가 언론인, 전문가, 정치권 주변 인맥을 활용해 정책과 여론에 접근하려 할 때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차단해야 하는가.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뿐 아니라 정보, 여론,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과 서방 사회 내부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파우켄 사건은 그 방식이 반드시 영화 속 간첩처럼 은밀한 문서 절취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 작성, 인맥 연결, 정책 조언, 고액 자문료, 언론 활동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미 하나의 경고를 남기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개방성은 강점이지만, 그 개방성을 전체주의 국가의 침투와 영향력 공작에 무방비로 내어주는 순간 국가안보의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