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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늘] 최선희-싱가포르 외무장관 회담

2026-05-27 22:00 | 입력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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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 탈피 노리는 평양, 국제사회는 ‘대화’와 ‘이용’의 경계 분명히 해야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 최선희 외무상이 26일 평양에서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상과 회담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양측이 “조선·싱가포르 친선협조관계” 강화와 외무성 간 교류, 지역 및 국제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 외교부도 발라크리쉬난 장관이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북한을 실무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북은 싱가포르 외무장관의 8년 만의 북한 방문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만 보면 이번 회담은 평범한 양자 외교 일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현재 처지를 감안하면, 이는 단순한 친선 교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핵·미사일 개발, 유엔 제재, 인권 탄압, 국제적 고립 속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자신을 ‘정상국가’로 보이게 만드는 외교 무대를 필요로 해왔다. 평양이 외국 고위 인사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다. 당시 싱가포르는 김정은을 국제 외교 무대의 중심에 세우는 상징적 공간이 됐다.

로이터도 발라크리쉬난 장관이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당시 내각 인사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번 방문이 남북한을 모두 포함하는 드문 외교 일정이라고 전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싱가포르라는 이름 자체가 ‘대화 재개’와 ‘외교적 복귀’를 연상시키는 소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회담을 내부 선전과 대외 이미지 개선에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늘 그렇듯 구체적 내용보다 의례적 표현에 집중했다. “친선협조관계”, “두 나라 인민의 지향과 염원”, “다방면적 발전”이라는 문구는 화려하지만, 정작 북한 주민의 자유, 인권, 식량난, 정치범수용소, 납북자·억류자 문제 등 핵심 사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북한 외교 보도의 전형적 방식이다. 정권의 책임은 감추고, 외교적 접촉만 부각해 마치 국제사회가 북한을 인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동북아 정세 안정과 외교 채널 유지를 위해 북한과 접촉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비난할 필요는 없다. 외교는 때로 불편한 상대와도 대화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대화를 주민을 위한 개방의 계기로 삼기보다, 정권 생존과 제재 균열의 수단으로 삼아온 전력이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북한과 접촉할 때마다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대화는 가능하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거나 인권 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이번 회담에서 “지역 및 국제문제”가 논의됐다고 하지만, 북한이 실제로 국제사회에 답해야 할 문제는 명확하다. 첫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해 온 핵·미사일 개발 문제다. 둘째, 북한 주민을 체제의 인질로 삼는 구조적 인권 탄압이다. 셋째, 납북자·국군포로·억류자 문제와 같은 반인도적 사안이다. 넷째,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과의 결속을 통해 국제 질서의 균열을 이용하려는 행태다.

북한은 외교 무대에 나올 때마다 ‘친선’과 ‘협조’를 말한다. 그러나 정작 북한 주민에게는 이동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신앙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외국 외무장관에게는 연회를 베풀면서도 자국 주민에게는 통제와 감시, 충성 경쟁을 강요하는 체제가 바로 북한이다. 이런 정권이 말하는 “친선”은 주민을 위한 평화가 아니라 정권을 위한 숨통 트기일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과의 대화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북한이 대화를 ‘변화의 출발점’이 아니라 ‘정권 정상화의 선전물’로 소비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외무장관의 방북이 한반도 긴장 완화와 실질적 문제 해결로 이어지려면, 북한의 선전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 위협과 인권 탄압을 회담장의 의제 밖으로 밀어내는 순간, 대화는 평화를 위한 통로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외교적 방패가 될 수 있다.

평양은 이번 회담을 “친선협조관계 강화”로 포장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북한은 과연 주민의 삶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가. 핵과 미사일 대신 개방과 인권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납북자와 국군포로, 억류자 문제에 답할 용의가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북한의 외교 행보는 정상국가의 외교가 아니라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체제 선전의 연장일 뿐이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평양의 미소 외교에 속아서는 안 된다.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북한 정권이 그 문을 제재 회피와 이미지 세탁의 통로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더 냉정하고 원칙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김·도·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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