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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늘] “세계급혈자의 날”

2026-06-17 22:15 | 입력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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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 뒤에 가려진 북한 보건의 민낯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이 6월 1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세계급혈자의 날에 즈음한 행사”가 보건성 수혈원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행사에는 보건성 관계자와 자원급혈자, 평양시 안의 의료일꾼, 수혈원 종업원들이 참석했으며, 발언자는 자발적으로 혈액을 기증한 급혈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안전한 혈액과 혈액제품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겉으로만 보면 국제기념일에 맞춘 보건 분야 행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 당국이 “생명 구원”과 “환자 치료”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국가의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면, 북한의 보건 현실은 지금과 같을 수 없다.

의료기관에는 기본 의약품과 장비가 부족하고, 지방 주민들은 진료와 치료의 접근성에서 심각한 차별을 겪고 있으며, 많은 경우 환자와 가족이 치료비와 약품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구조에 내몰려 있다.

이번 보도에서도 당국은 “실험검사의 질”과 “안전성이 담보된 혈액과 혈액제품”을 강조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 수혈 체계가 여전히 안정성과 전문성의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혈액은 단순히 많이 모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감염병 검사, 보관, 운송, 분배, 응급 대응, 지역 의료망과의 연계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거나 국제 기준에 맞춰 개선하려 하기보다, 행사를 통해 체제 선전용 장면을 연출하는 데 익숙하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보건정책이 주민의 생명권보다 체제 유지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막대한 자원이 핵·미사일 개발과 군사력 과시에 투입되는 동안, 주민의 병원과 보건소는 낙후된 시설과 물자 부족 속에 방치되어 왔다. 수혈 안전성을 말하려면 먼저 의료 체계 전반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당국은 군사 도발과 체제 선전에 쓰는 자원을 주민 의료와 공중보건에 돌려야 한다.

자원급혈자들의 선의는 존중받아야 한다. 피를 나누어 생명을 살리려는 행동 자체는 어느 사회에서나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그 선의를 정치적 선전물로 포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헌신과 희생을 체제의 성과처럼 선전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안전하고 인간다운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급혈자의 날의 본래 의미는 생명 존중과 공공의료의 책임을 되새기는 데 있다. 북한이 이 날을 진정으로 기념하고자 한다면, 형식적 행사와 사진 전시가 아니라 보건의료 현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해 혈액 안전망과 의료 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주민의 건강권을 국가의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

피 한 방울의 가치는 선전 구호보다 무겁다. 북한 당국이 정말로 생명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주민을 체제의 도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급혈자의 날 행사가 보여준 것은 북한 보건의 성과가 아니라, 생명 존중을 말하면서도 생명을 억압하는 체제의 모순이다.

김·성·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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