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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행정장관에게 ‘국가안보 사건’ 규정권 부여

2026-06-17 22:20 | 입력 : 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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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 위에 선 행정권.. 홍콩 법치의 마지막 안전장치 흔들리나

독자 제공
독자 제공

홍콩 정부가 행정장관에게 특정 형사 사건을 ‘국가안보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새 절차 규정을 시행하면서 홍콩의 법치와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 당국은 6월 9일 《국가안전유지 절차사항 규정》을 관보에 게재하고 즉시 발효시켰다. 이 규정은 행정장관이 특정 형사 사건의 행위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할 경우, 증명서를 발급해 해당 사건을 국가안보 사건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이 증명서가 법원에 절대적 구속력을 갖고, 어떤 법원에서도 그 효력을 다툴 수 없도록 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절차 정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행정권이 형사 사건의 성격을 최종적으로 규정하고 사법부는 이를 따라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홍콩의 보통법 전통에서 핵심으로 여겨져 온 사법심사, 배심재판, 보석 원칙, 공개재판의 의미가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크게 후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 규정에 따르면 행정장관이 증명서를 발급하면 해당 사건은 국가안보 사건으로 처리된다. 이 경우 사건은 행정장관이 지정한 판사가 심리하게 되며, 법무부 장관은 배심원 없이 재판을 진행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심리는 비공개로 열릴 수도 있다.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피고인의 구금 기간은 크게 늘어나고, 보석 기준도 훨씬 엄격해진다.

특히 피고인이 국가안보를 계속 해칠 가능성이 없다고 당국이 확신하지 않는 한 보석은 사실상 어렵다. 국가안보 사건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장기 구금과 높은 보석 문턱은 이미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반복적으로 문제 제기돼 온 사안이다.

여기에 이번 규정은 행정장관의 판단만으로 더 많은 사건을 국가안보 절차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더 큰 논란은 이 규정이 과거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범죄 행위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전에 발생했는지, 이후에 발생했는지와 관계없이 행정장관이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홍콩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행정장관 이가초는 국가안보 사안은 외부세력, 전문 정보기관, 고도의 음모와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행정구 수장이 책임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 린딩궈 역시 이번 규정은 새로운 권한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법률 체계를 보다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안국장 덩빙창도 “국가안보 수호는 진행형”이라며 제도의 허점을 계속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권단체와 비판적 논객들의 시각은 정반대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이번 규정이 수사, 보석, 재판, 석방 절차 전반에서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행정장관에게 사실상 최종적 판단권을 부여하고, 그 판단을 법원이 심사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권력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칼럼니스트 펑시첸은 행정장관이 ‘민감한 정보’를 근거로 증명서를 발급한다고 해도, 시민들은 그 정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는 사법 절차를 공개 검증이 불가능한 ‘블랙박스’로 만들 수 있으며, 법치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행정장관 증명서는 여러 사건에서 사용됐다. 민주화 시위의 상징곡으로 알려진 노래에 대한 금지명령 사건, 홍콩대 학생회 관련 사건, 수감자의 도서 압수 사건 등에서 행정장관의 국가안보 판단은 법원 절차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번 규정은 그러한 관행을 제도화하고,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홍콩 당국은 “새로운 처벌도, 새로운 범죄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와 법치의 후퇴는 언제나 노골적인 탄압의 이름으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절차 명확화’, ‘분쟁 감소’, ‘국가안보 수호’라는 행정적 언어 속에서 진행된다. 핵심은 누가 최종 판단권을 갖느냐이다. 이번 규정은 그 판단권을 법원이 아니라 행정장관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홍콩은 한때 아시아에서 법치와 자유의 상징으로 불렸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언론, 시민사회, 야당 정치, 대학가, 출판과 문화 영역은 급속히 위축됐다. 이번 절차 규정은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일반 형사사건까지 언제든 정치적 성격의 사건으로 재분류될 수 있다면, 시민들은 권력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결국 이번 조치는 홍콩의 국가안보 체제가 예외적 장치에서 일상적 통치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원이 판단해야 할 문제를 행정장관의 증명서가 결정하고, 시민이 다툴 수 있어야 할 권리를 법률이 봉쇄한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통치 편의를 위한 법률의 동원이다.

홍콩의 위기는 단지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도시가 어떻게 권위주의적 국가안보 체제 아래 침묵의 도시로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국제사회는 홍콩 정부의 설명만을 반복해서 들을 것이 아니라, 사법 독립과 시민 자유가 실제로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주시해야 한다.

장·춘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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