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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가 은산종이공장의 생산능력 확대와 학습장 생산 공정 신설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은산종이공장에서는 설비개조사업과 함께 학습장, 종이제품, 포장용기까지 생산할 수 있는 새 공정 확립 공사가 추진되고 있으며, 국가과학원과 지방 당 조직, 공장 종업원들이 총동원돼 생산능력 향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만 보면 이는 지방공업 발전과 교육 물자 공급 확대를 위한 긍정적 조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식 선전 문법을 걷어내고 보면, 이번 보도 역시 주민 생활의 실질적 개선보다 당 정책 관철과 동원 실적 과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우선 주목할 대목은 ‘학습장 생산’이라는 표현이다. 학습장은 학생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교육 물자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학생들이 학습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특별한 성과가 아니라 기본 행정의 영역이다.
그런데 신보는 이를 마치 거대한 혁신 사업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지방과 학교 현장에서 기본 학용품조차 충분히 공급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또한 보도는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철야전”을 강조한다. 조선신보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 표현은 주민과 노동자들의 희생을 미화하는 대표적 선전어다. 생산능력 확대라는 이름 아래 노동 강도는 높아지고, 공장 종업원들은 기술개조와 건축공사, 설비 설치에까지 동원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안전, 휴식, 생활 여건이 어떻게 보장되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은 ‘대중적 기술혁신운동’과 ‘우리 식의 제지법’을 강조하지만, 이는 기술 발전의 자율성과 시장 경쟁의 결과라기보다 계획경제 체제의 한계를 주민 동원으로 메우는 방식에 가깝다.
원료 부족, 전력난, 노후 설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력갱생’과 ‘국산화’를 외치는 것은 체제의 구조적 실패를 포장하는 데 불과하다.
특히 국가과학원이 설비개조에 참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역량이 주민 생활 개선에 투입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과학기술 역시 당 정책 수행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자와 기술자들이 자유로운 연구 환경 속에서 혁신을 만들어내기보다, 상부의 지시와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장에 투입되는 구조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투명성의 부재다. 이번 보도에는 생산능력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학습장이 어느 지역 학생들에게 얼마나 공급되는지,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는지, 주민들이 실제로 혜택을 받는지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다.
“종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원단위소비기준을 현저히 낮췄다”는 식의 표현만 있을 뿐, 검증 가능한 수치는 제시되지 않는다. 이는 성과를 알리는 기사라기보다 체제 충성 경쟁을 위한 선전문에 가깝다.
종이공장의 생산능력 확대가 진정 주민 생활과 교육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공급의 투명성이다. 학생들에게 학습장이 안정적으로 전달되는지, 지방 주민들이 포장용기와 종이제품을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지, 노동자들이 과도한 동원에 시달리지 않는지부터 공개되어야 한다.
북한 당국은 은산종이공장을 ‘전국적 본보기’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은 철야전과 충성 경쟁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기본 학용품을 정상적으로 공급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며, 생산 성과를 주민 생활 개선으로 연결하는 행정 능력이다.
학습장 하나를 만드는 일조차 당의 은정과 혁신 성과로 포장해야 하는 현실은 북한 경제의 성취가 아니라 결핍을 보여준다. 은산종이공장의 진짜 평가는 선전 구호가 아니라 학생들의 책가방 속 학습장,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 주민들이 체감하는 변화 속에서 내려져야 한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