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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지금 세계는 기묘한 역설 앞에 서 있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전체주의 국가들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빠르게 연대하고 있다. 독재자는 독재자를 감싸고, 침략자는 침략자를 두둔하며, 폐쇄된 권력들은 군사·경제·외교의 울타리를 함께 쌓는다. 그들에게 이념과 국경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지키는 일이다. 자유로운 세계에 맞서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과도 손을 잡는다.
반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번영과 자유를 이룩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내부 갈등에 빠져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정치권은 당파적 이해에 매몰되고, 시민사회는 작은 차이를 절대적 적대감으로 키우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책임보다 개인의 권리만을 앞세우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전체주의는 연대하는데 민주주의는 분열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자유세계가 맞닥뜨린 가장 심각한 위기다.
미국 헌법제정회의가 끝난 뒤 한 시민이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어떤 정부를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진다.
“공화국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이 말의 핵심은 ‘공화국’이 아니라 ‘지킬 수 있다면’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헌법에 글자로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존속하는 체제가 아니다. 선거가 열리고 의회가 존재하며 법원이 운영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지키려는 시민이 있을 때만 살아남는다.
전체주의는 개인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생각하지 말고 명령을 따르라고 한다. 책임은 권력자가 지고, 개인은 침묵하면 된다고 유혹한다. 그래서 전체주의는 때때로 편안해 보인다. 자유롭게 판단해야 할 부담도 없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해야 할 책임도 없으며, 잘못된 결과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권력자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정반대다.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무엇이 옳은가. 어떤 선택이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부당한 권력에 맞설 용기가 있는가. 나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할 수 있는가.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주는 대신 책임을 요구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대신 의무를 부과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유는 어렵다.
오늘날 우리는 앉아서 보고, 듣고, 소비하고, 즐기는 일에 너무 익숙해졌다. 누군가가 대신 판단해 주고,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해 주며, 국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면서 자유의 혜택만 누리려 한다. 그러나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으로 변하고, 의무 없는 권리는 특권으로 변하며,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선동가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전체주의 세력이 강해진 것은 그들이 정의롭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강해 보이는 것이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은 제도가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제도를 지켜야 할 시민들이 자유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유는 상속받을 수 있어도 자동으로 보존되지는 않는다. 한 세대가 피와 땀으로 세운 자유를 다음 세대가 무관심 속에서 잃어버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자유를 파괴하는 세력은 어느 날 갑자기 탱크를 몰고 나타나지 않는다. 거짓을 진실처럼 반복하고, 법을 권력의 무기로 바꾸며, 표현의 자유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한하고, 시민들에게 침묵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가르치면서 조금씩 자유의 기반을 허문다.
그러므로 오늘날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영웅이 아니다. 깨어 있는 개인과 책임지는 공동체다.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시민, 불의한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언론인, 정치적 유불리보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공직자, 다음 세대에게 자유의 가치와 비용을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내놓는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전체주의의 연대에 맞서 자유세계가 구축해야 할 가장 강력한 연대는 무기와 자본만의 연대가 아니다. 자유를 지키겠다는 시민적 각오의 연대, 진실과 법치에 대한 연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양심의 연대다.
자유민주주의는 저절로 승리하지 않는다. 역사가 언제나 자유의 편이라는 믿음도 위험한 착각이다.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역사는 언제든 폭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공포와 강요로 사람을 묶지만, 자유민주주의는 각성된 개인의 양심과 자발적 헌신으로 공동체를 세운다. 강요된 충성보다 자발적 헌신이 강하고, 거짓으로 쌓은 권력보다 진실을 지키려는 시민의 용기가 오래간다.
연대하는 전체주의를 이기는 길은 갈등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갈등 속에서도 자유의 원칙을 지키고, 서로의 차이를 넘어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지는 데 있다.
공화국을 물려받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지킬 각오가 되어 있는가.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리베르타임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