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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향산호텔 창립 40돌을 맞아 현지에서 기념보고회를 열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축하문을 전달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14일 열린 보고회에는 당 중앙위원회 김성철 부장을 비롯한 관계 부문 간부들과 향산호텔 일군·종업원들이 참석했다. 당 중앙위원회는 축하문에서 향산호텔을 “묘향산과 더불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봉사기지”라며, 인민의 건강증진과 문명향유를 위한 휴양지로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북한 당국 특유의 선전 문법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향산호텔 40돌 기념행사는 단순한 호텔 창립 기념식이라기보다, 북한 정권이 관광·휴양 시설을 체제 선전의 무대로 활용하는 방식을 다시 보여준다.
‘인민의 문화생활 향상’이라는 말은 화려하지만, 실제 북한 주민 다수의 삶은 여전히 식량난, 이동 제한, 정보 통제,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고급 호텔과 명산 휴양지를 앞세워 ‘문명향유’를 말하는 것은 북한 사회의 극심한 격차를 가리는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향산호텔은 묘향산 관광의 상징적 시설로 알려져 왔다. 묘향산은 북한이 대외 관광, 외국인 접대, 체제 홍보에 활용해 온 대표적 명소다. 북한 당국은 이번 축하문에서도 호텔의 “명성”과 “관록”을 강조했지만, 정작 이 시설이 얼마나 일반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개방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에서 이동은 여전히 엄격히 통제되고 있으며, 주민이 자유롭게 여행하고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일은 정상국가의 국민처럼 보장되지 않는다. ‘인민의 휴양지’라는 선전과 달리, 이런 시설들은 상당 부분 간부층, 외화벌이 관광, 외빈 접대, 체제 과시를 위한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더욱이 북한은 최근 평양의 대규모 살림집 건설, 지방 발전, 휴양지 개발, 관광지 정비 등을 잇달아 선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민 생활 향상과 문명국가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정권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주민들의 기본 생존권과 인권 개선보다 체제의 외관을 꾸미는 사업이 먼저이고, 주민의 자유보다 당의 업적 선전이 앞선다. 향산호텔 40돌 행사 역시 호텔 종업원의 노고를 치하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 메시지는 “당의 은덕”, “당의 영도”, “사회주의 문명”을 부각하는 데 맞춰져 있다.
특히 북한 매체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봉사기지”라는 표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호텔은 소비자 선택과 서비스 경쟁 속에서 평가받는 상업·관광 시설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호텔은 시장의 서비스 공간이라기보다 국가와 당이 관리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종업원 역시 고객을 위한 서비스 노동자이기 이전에, 당의 지시와 조직생활 속에 놓인 체제 구성원이다. 이번 기념보고회가 호텔의 경영 성과나 주민 이용 실태가 아니라 당 중앙위원회 축하문 전달을 중심으로 진행된 것도 이 같은 구조를 잘 보여준다.
북한 당국은 향산호텔을 “인민의 건강증진과 문명향유”의 상징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명향유란 화려한 호텔을 기념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여행하고, 쉬고,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호텔 하나의 연혁을 자랑하기 전에, 북한 주민들이 왜 자기 나라 안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지, 왜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지, 왜 기본적인 생활 수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향산호텔 창립 40돌 기념보고회는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와 감추고 싶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정권은 묘향산의 경관과 호텔의 역사를 앞세워 ‘문명’과 ‘복지’를 말하지만, 주민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호텔의 대리석 로비가 아니라 자유와 권리의 부재다. 인민을 위한 휴양지를 말하려면 먼저 인민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결국 이번 행사는 북한 관광정치의 전형적인 장면이다. 명산과 호텔, 축하문과 보고회, 종업원의 충성 맹세가 결합해 체제의 정상성과 우월성을 연출한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표현으로 포장해도, 주민의 자유가 없는 ‘문명향유’는 선전에 불과하다.
향산호텔 40돌이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상징하려면, 기념보고회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주민의 이동 자유, 경제적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근본적 변화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