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질병이나 나약함, 굶주림이나 가난, 육체적·정신적 질환, 외로움이나 노년이 동반된다고 해서 결코 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 감동적인 말은 제가 사랑하는 전임자 테런스 쿡 추기경께서 1983년 10월 백혈병으로 선종하시기 얼마 전 남기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 하느님께서 주신 거룩한 선물이며, 우리가 보호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임을 시의적절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불과 1년여 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질병과 노쇠로 분명히 약해지신 몸으로 부활 대축일에 포프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가시며 자연스러운 죽음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황께서는 그다음 날 생명을 앗아갈 고통과 병고를 겪고 계셨음에도, 고통 속에서도 생명의 존엄이 있음을 증언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2005년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시기 전 같은 증언을 보여 주셨습니다.
슬프게도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돌봄과 보호와 존엄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우리 문화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50년 넘게 합법화된 낙태가 어떤 생명은 값싸고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크게 조장해 왔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일회용 문화”라고 부르신 현실, 곧 불편한 존재,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존재, 또는 짐으로 간주되는 이들을 내버리는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같은 태도는 이민자나 노숙인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나며, 전쟁의 참상에 대한 냉담함과 일부에서 사형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태도는 전국적으로 의사 조력 자살을 서둘러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여기 뉴욕에서는 2025년 주 의회를 통과하고 올해 2월 주지사가 서명하여 법률로 제정한 「임종 의료 지원법」이 8월 5일부터 시행됩니다. 이는 인간 생명에 대한 가장 최근의 공격이며, 완전한 ‘일회용 사고방식’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단계입니다.
이 법이 발효되면 뉴욕에서는 새롭고도 두려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말기 환자에 대한 이른바 “연민”이 언제부터 장애인, 노인, 빈곤층과 의료 소외 지역의 사람들을 포함한 온갖 취약한 이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선택”에서 “기대”로 변질될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법이 일단 제정되면, 우리는 그것이 만들어 내는 미끄러운 경사면을 경계해야 합니다. 개인의 선택으로 시작된 일이 정부 기관이나 보험회사와 같은 외부 세력이 임종에 관한 결정을 좌우하거나 심지어 지시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인간 생명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존중과 보호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연민과 경계심을 동시에 가지고 막아야 할 미래입니다.
우리는 이미 사회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짐”이 되지 말라는 압박의 많은 사례를 보아 왔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애초에 죽음을 앞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주장되었던 법이 빠르게 확대되어, 관절염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만성적” 질환을 가진 이들까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이 법이 다시 확대되어, 우울증, 불안, 거식증과 같은 정신질환만을 기저 질환으로 가진 이들도 이른바 “임종 의료 지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본능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 합니다. 불과 몇 주 전에도 우리 언론은 뉴욕시 경찰국이 고층 건물 가장자리에 앉아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던 자살 위기의 여성을 구한 일을 찬사를 담아 보도했습니다. 용감하고 연민 가득한 경찰관들은 그 여성의 말을 들어 주었고, 그녀와 함께 난간에 앉았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고, 자신들이 그녀를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안전한 곳으로 돌아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했습니다.
칭찬할 만하게도 뉴욕주는 청소년 자살 예방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많은 다리와 철도 건널목에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문구와 함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른 이들이 생을 마감하도록 돕는 일을 서두르는 현실과 얼마나 모순되는 일입니까.
이 일회용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자살을 생각하는 절망에 빠진 사람이 더 이상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달리는 열차 앞으로 몸을 던질 필요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그 대신 의사에게 전화 한 통만 하면, 국가의 전폭적인 승인 아래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약물을 확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뉴욕과 다른 주들이 말기 환자들에게 자살을 제공하려 서두르는 가운데서도, 참된 “존엄한 죽음”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들이 있습니다. 완화 의료는 큰 진전을 이루어 왔으며, 여기 뉴욕 대교구 안에서는 칼바리 병원과 호손의 도미니코 수녀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제공 기관을 통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완화 의료는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진 이들이 고통 없이, 또 자신이 짐이 된다는 두려움 없이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뉴욕주 가톨릭 회의는 임종 결정에 직면할 때 도움을 주는 포괄적이면서도 읽기 쉬운 안내서를 제공해 왔습니다. 『지금 그리고 우리 죽을 때에 : 임종 결정에 관한 가톨릭 안내서』라는 제목의 이 자료는 이러한 어려운 결정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지침을 찾는 가톨릭 신자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매우 소중한 자료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현세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있음을 압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정당하게 요구하듯이, 우리 자신의 생명 역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