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 뉴스홈 > 오피니언 > 종교 기사 제목:

[USA 가톨릭 390] 미국은 어디에 있는가

2026-07-05 08:14 | 입력 : 리베르타임즈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미합중국은 하나의 건국 문서, 곧 독립선언서에 따라 자신의 탄생을 기념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고귀한 신조를 자주 내세운다. 우리는 참으로 이상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1963년, 링컨 기념관 계단에서 연설하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그 신조와 이상이 지닌 명백한 뜻만으로 우리의 정신과 양심에 도전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들을 우리나라의 골수 깊은 곳까지 밀어 넣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뉴햄프셔에서 뉴욕까지, 콜로라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과 작은 둔덕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소의 호명을 길게 읊었다. 그 정신에 따라 우리는 여러 《First Things》 필자와 편집자들에게 하나의 오래된 질문을 묵상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신은 어느 장소에서 미국이 육화되어 있음을 발견하는가?

마크 바우어라인 《First Things》의 기고 편집자

2023년 6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나는 위스콘신주, 그 주의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뒤뜰에는 개울이 흐르고, 길 건너편에는 울타리 옆에서 소들이 풀을 뜯는 아미시 농장이 있는 집을 빌렸다. 가장 가까운 마을, 인구 447명의 그곳은 5마일 떨어져 있었다. 그 마을에는 하나의 큰길, 그렇다, 메인스트리트가 있었고, 거기에는 지역 은행, 우체국, 이발소, 도서관, 베이커리 카페, 선물 가게가 있었다. 은행 안으로 들어서면 창구 직원이 “안녕하세요, 마크,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노래하듯 외치곤 했다.

한 번은 일주일간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우편물을 찾으러 우체국에 들렀는데, 문 닫은 지 이미 10분이 지난 뒤였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고, 여직원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아, 우편물 찾으시려고요. 들어오세요.”

식료품이 떨어지면 나는 아미시 농장들 가운데 한 곳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뒤쪽 방으로 들어간 뒤 달걀과 채소를 집어 들고, 아무도 보지 못한 채 계산대 위 커피 깡통 속의 돈들 사이에 내 달러를 넣어 두었다. 밤은 고요했고, 가장 밝은 달이 떠 있을 때를 제외하면 칠흑같이 어두웠다.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비행기 소리는 드물게 지나가는 농약 살포기뿐이었다.

매일 오후 나는 옥수수밭과 소나무 숲이 늘어선 곧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20마일씩 자전거를 탔다. 자동차는 한두 대 마주칠 뿐이었고, 오히려 말과 마차를 더 자주 보았다. 한 번은 플라이 낚시꾼이 나타났지만, 정말 그 한 번뿐이었다.

정치와 언론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2024년 가을에 보인 유일한 선거 메시지는 “모든 리버럴을 추방하라”는 작은 마당 표지판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정책이 아니라 유머로 받아들였다. 그곳은 농작물, 동물, 높은 신뢰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19세기 미국의 한 해였거나, 적어도 내가 그렇게 상상할 만큼 충분히 오래된 요소들을 지닌 장소였다.

메리 에버스타트 신앙과 이성 연구소 선임 연구원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형적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뉴욕주 중부 시골에 있는 작고 평평한 땅이다. 오늘날에는 숲으로 뒤덮여 있고, 한쪽 끝에 소박한 돌비석 하나만 세워져 있는 그곳은 계절에 따라 길이가 1마일에서 7마일까지 달라진다.

그러나 바로 이 작은 장소 때문에 이로쿼이 연맹의 오네이다 부족은 미국인들 편에 섰고, 결국 식민지인들에게 결정적인 추진력을 안겨 주었다. 바로 그 장소 때문에 인근의 오리스커니 전장은 독립전쟁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현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바로 그 장소 때문에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예리한 관찰자들은 이 운반로가 대서양과 대륙 내륙을 잇는 열쇠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길의 점들을 연결하는 이 일은 장차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까지 바꾸어 놓게 된다.

그 땅 조각은 영어로 오네이다 캐리, 곧 오네이다 운반로라고 알려져 있다. 이 장소에는 모든 방향으로 역사가 스며 있다. 하우데노사우니 사람들로부터 예수회 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제2차 대각성에서 이리 운하의 다채로운 번영기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제조업 일자리의 흥망성쇠에서 21세기 오피오이드와 펜타닐 위기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그 운반로가 국가의 이야기에 매우 중요하듯, 내게 그것은 또 다른 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내가 자란 작은 마을들과 촌락들의 지리적 중심이다. 곧 그 주위에서 시작되었고, 이 겉보기에는 소박한 장소가 가능하게 한 광대한 미국 안으로, 이 나라처럼 바깥을 향해 확장되어 간 삶에 대한 나 자신의 내면적 은유이다.

에프라임 래드너 위클리프 칼리지 역사신학 명예교수

나는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 한 번 이상,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는 태평양 소노마 해안에 있는 포트 로스를 방문했다. “로스”는 “루스”에서 유래했는데, 그곳은 1812년에 러시아인 25명과 알래스카 원주민 80명이 도착하면서 세워진 오래된 러시아 교역소였다. 이곳은 1841년까지 운영되다가, 골드러시로 유명한 존 서터에게 팔렸다. 복원된 숙소와 장교 및 그 가족들의 집을 걸어 다닐 수 있다. 경당도 하나 있다. 정교회 경당이다. 아이들과 많은 포모 원주민들이 묻힌 공동묘지도 있다.

1836년, 훗날 “알래스카의 인노첸시오”로 시성된 요한 베니아미노프가 이 요새를 사목 방문했다. 젊은 선교사였던 요한은 알류트인들 가운데서 탁월한 복음 선포자이자 교리교사였다. 포트 로스에서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만난 가톨릭 신자들, 곧 멕시코인들을 만났다. 희망들의 기묘한 모임이었다.

포트 로스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높은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태평양의 위험한 파도가 있다. 위쪽 공동묘지는 익사한 이들로 가득하다. 거의 멸종될 정도로 사냥당했던 물개들은 다시 돌아왔다. 캘리포니아 시인 로빈슨 제퍼스가 묘사했듯, 그곳은 인간의 외침이 수평선 속으로 녹아드는 장소다.

나는 미국 안의 여러 민족들의 뒤섞임을 미국의 강렬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보는 사람들 중 하나다. 다양성 그 자체가 덕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그 만남의 광대하고 때로 폭력적인 충돌이 세계의 우뚝 솟은 가장자리로 밀려붙는 곳이며, 그 충돌이 모든 것의 주님을 그 근원과 목적으로 삼는 갈망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가장 훌륭할 때, 우리는 이것을 알아본다.

R. R. 리노 《First Things》 편집장

아내와 나는 최근 몬태나주 남동부에 있는 리틀 빅혼 전장 국립기념지를 방문했다. 1876년 6월 말, 조지 A. 커스터가 지휘하는 미합중국 기병대의 한 분견대가 리틀 빅혼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시팅 불과 크레이지 호스의 지도 아래 대평원 인디언 연합군이 집결해 있었다. 커스터와 그의 부하들은 압도당했고 언덕 꼭대기로 후퇴했다. 그들은 밀려오는 공격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며 말들을 죽여 임시 흉벽을 만들었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곳은 강렬한 장소다. 비극과 잔혹함과 폭력의 장소다. 그 전투는 커스터의 마지막 항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마지막 항전이기도 했다. 다시는 대륙을 가득 채우며 밀려오는 새로운 미국인들의 물결을 옛 미국인들이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은 용기, 결단, 헌신, 고귀함, 영웅주의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은 또한 겸손의 장소다. 아브라함 링컨이 우리가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섭리의 다스림을 말했을 때 권고했던 바로 그런 겸손이다. 햇볕에 바랜 작은 돌 기념비들이 병사들이 쓰러진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그 수는 많지 않다. 앤티텀이나 게티즈버그 같은 곳에 끝없이 늘어선 남북전쟁 전사자들의 묘비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언덕 꼭대기 자체도 모든 방향으로 펼쳐진 광대하고 텅 빈 풍경 앞에서, 또 우리가 방문한 날 단단한 금강석 같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지평선 끝까지 뻗는 듯한 높은 권운들이 가로지르던 하늘 앞에서 작아 보였다.

아마도 나무 없는 평원을 가로질러 휘몰아치던 날카로운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미국 서부에서 떠돌며 살던 시절 익숙하게 느꼈던 바람이었다. 아니면 우리가 12월 초에 그곳을 방문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주간고속도로가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는 시기였고, 우리는 기념비들 사이에 홀로 있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홀로 있었듯, 존 뮤어가 시에라네바다의 높은 산악 요새에서 홀로 있었듯, 월트 휘트먼이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노래 속에서 홀로 있었듯, 제이 개츠비가 자기 창조 속에서 홀로 있었듯 말이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 순간 나는 내 나라의 중심에 서 있다고 느꼈다. 그 나라의 역사와 신화, 꿈과 악몽이 몬태나의 외딴 언덕 꼭대기 바로 그곳으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도, 동시에 신비로운 사자들처럼 모든 미국인 마음의 가장 깊고 거룩한 곳을 향해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칼 R. 트루먼 성서학·종교학 교수

내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영국에서 자랄 때, 미국은 서부영화의 신화였다. 내게 그 나라는 언제나 존 포드의 영화들이 되돌아가던 풍경으로 규정될 것이다. 곧 나바호족의 땅 위에 서 있으며 그들에게 신성한, 기묘한 사암 뷰트들이 솟아 있는 모뉴먼트 밸리다.

포드의 영화들은 또한 1950년대 서부영화 장르의 도덕적 복잡성이 깊어지는 과정도 증언했다. 존 웨인은 대체로 매우 제한적인 배우였지만, 포드는 그에게서 깊이를 끌어낼 수 있었다. 특히 걸작 영화 《수색자》의 중심인물, 어둡고 불길한 이선 에드워즈에게서 그러했다.

그로부터 12년 뒤, 내게는 모든 서부영화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인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서 세르조 레오네는 영화 초반부 배경으로 모뉴먼트 밸리를 사용함으로써 포드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 영화는 《수색자》가 기여했던 장르의 도덕적 모호성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레오네는 또한 미국 자체의 모호성도 가리킨다.

서부 팽창과 착취 사이의 긴밀한 관계, 떠오르는 근대 경제의 창조성과 잔혹성, 구원의 신화에서 총기 폭력이 맡는 역할, 영웅과 악당 사이의 가느다란 경계가 그것이다. 푸른 눈의 선량한 남자 헨리 폰다를 사이코패스 총잡이 프랭크로 캐스팅한 것은 천재적인 한 수였다. 그것은 잘생긴 외모를 도덕적 덕성과 동일시하려는 미국적 경향에 대해 명백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아마 서부영화 역사상 가장 긴 오프닝 크레딧 장면은 내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장면이다.

조지 바이겔 윤리·공공정책 센터 선임 연구원

우리의 사랑과 충성의 올바른 질서는 그것들과 그것들의 관계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나의 첫 번째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의, 그리고 그분의 교회에 대한 것이기에, 미국의 애국자인 내게 “가장 미국적인” 장소는 우리 세대의 볼티모어 사람들이 옛 주교좌성당으로 알고 있는 곳, 곧 복되신 동정 마리아 승천 국립 성지 대성전이다.

그곳은 연방 시대 건축의 장엄한 사례로, 미합중국 국회의사당의 첫 건축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벤저민 라트로브가 설계했다. 옛 주교좌성당에서는 미국의 그 어느 곳보다 많은 미국 가톨릭 역사가 이루어졌다. 나와 이 대성전의 개인적 인연에는 내 아들의 세례성사, 내 딸의 혼인성사, 그리고 나 자신의 첫 고해성사와 첫 영성체, 대학 졸업식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 심포지엄의 주제와 더 직접 관련하여 말하자면, 볼티모어 대성전은 미국 가톨릭의 이야기와 미국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 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나의 이야기와 내 가족의 이야기도 독특한 방식으로 짜여 들어가 있다.

새로운 미합중국의 첫 가톨릭 주교였던 존 캐럴 대주교는, 싹트기 시작한 공화국이 시민적·정치적 권리 가운데 첫째로 종교의 자유에 헌신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주교좌성당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건축가가 제안한 고딕 양식 대신, 채광창이 있는 이중 돔을 통해 확산되는 빛을 특징으로 하는, 라트로브의 고전주의적 영감을 받은 미국식 설계를 선택했다.

신앙과 이성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작용하는 빛, 곧 신앙이 이성의 지평을 넓히고 이성이 신앙을 정화하는 그 빛이, 미국이 창조주께서 인간 조건 안에 심어 놓으신 진리들 위에 독립의 정당성을 세운 나라로 존재할 수 있게 했다.

볼티모어 대성전은 미국 건국 250주년에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질서 있는 자유라는 미국의 실험이 지속되고 번영하려면, 신앙과 이성은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작용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Copyrights ⓒ 리베르타임즈 & www.libertimes.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더보기 리베르타임즈
댓글 :0
댓글 등록
0/400
  • 작성자명 |2024.11.14 10:30
    이곳은 댓글 작성한 내용이 나오는 자리 입니다.
1 2 3 4 5
리베르타임즈로고

신문사소개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도희윤) | 기사제보 | 문의하기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5길 12 타운빌 2층 | 이메일: libertimes.kr@gmail.com | 전화번호 : 02-735-1210
등록번호 : 415-82-89144 | 등록일자 : 2020년 10월 7일 | 발행/편집인 : 도희윤
기사제보 및 시민기자 지원: libertimes.kr@gmail.com
[구독 / 후원계좌 : 기업은행 035 - 110706 - 04 - 014 리베르타스협동조합]
Copyright @리베르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