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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96] 신앙의 보이지 않는 손

2026-07-11 07:13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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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브 루덴스트란드 Jacob Rudenstrand is deputy general secretary of the Swedish Evangelical Alliance and author of The First Right: Freedom to Religion, Freedom from Religion. 스웨덴 복음주의연맹 사무차장


2026년에는 종교의 자유가 지닌 항구적인 중요성을 함께 조명해 주는 세 가지 기념일이 겹친다. 이 해는 미국이 건국되고, 국가의 강제로부터 자유로운 양심의 자유를 토대로 하는 정치 질서가 수립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시에 스웨덴에서 경건회 금지법이 도입된 지 300주년이 되는 해이며,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세 기념일은 국가가 강제하는 정통 신앙이 초래하는 위험과, 종교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비롯한 자유가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드러내 준다.

수 세기 동안 스웨덴에서는 루터교 국교회 이외의 어떠한 신앙고백을 따르는 것도 불법이었다. 신성모독은 사형으로 처벌될 수도 있었다. 종교생활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광범위했다. 아이들은 출생 후 8일 안에 세례를 받아야 했고, 교회 출석은 의무였다. 가정별 교리문답 시험을 통해 주민들의 신앙이 검증되었다. 본당 목사는 영적 권위자일 뿐 아니라 교육과 사회복지, 인구 등록을 담당하는 국가 공무원의 역할도 수행했다.

내적 신앙과 개인적 확신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부흥운동이 세력을 얻자, 국가는 탄압으로 대응했다. 1726년 제정된 경건회 금지법은 국교회의 감독을 받지 않는 사적 가정 내 종교 집회를 금지했다. 이 법은 1858년까지 효력을 유지했으며, 스웨덴이 종교적 이견에 유난히 적대적인 나라라는 평판을 얻는 데 일조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은 벌금과 투옥, 극단적인 경우에는 추방형에 처해졌다.

마침내 추방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선원이자 1848년 스웨덴 최초의 침례교회 공동체를 설립한 프레드리크 올라우스 닐손이었다. 그는 훗날 자신이 받은 박해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예수님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교회 법정과 세속 법정 모두에 끌려가는 영예를 누렸다. 심지어 스웨덴 국왕 앞에까지 끌려갔다. 같은 이유로 여러 차례 피가 날 때까지 매를 맞았다. 무장한 사람들이 내 목숨을 빼앗으려고 밤낮으로 공공도로에 숨어 나를 기다렸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고백했다는 이유로 세 차례 공공 교도소에 갇혔다.... 그리고 당시 시행되던 법률에 따라 법원의 합법적인 판결을 받고 조국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형을 선고받았다.”

닐손은 남은 생애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보냈다. 경건회 금지법의 폐지는 하나로 통일된 국민교회라는 이상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음을 반영했다. 그러나 완전한 종교의 자유는 더디게 찾아왔다.

스웨덴 국민이 국교회를 아무런 조건 없이 탈퇴하고, 교회에 속하지 않은 채 공직을 맡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은 것은 1952년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에도 종교의 자유는 스웨덴의 기본권 가운데 가장 오해받는 권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경건회 금지법이 오늘날 스웨덴의 공식 문화 정전(正典)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그 법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에 대한 국가 권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여러 종교 전통의 공존이 허용되면 종교가 지닌 정치적 폭발성이 약화된다고 주장했다.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 다원주의라는 것이다. 스미스는 1776년에 오늘날에도 놀라울 만큼 유효한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제시했다.

“종교 교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적극적인 열정은 사회에서 오직 하나의 교파만이 용인될 때에만 위험하고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이백 또는 삼백 개의 교파, 어쩌면 수천 개에 이르는 작은 교파로 나뉘어 있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공공의 평온을 어지럽힐 만큼 강력하지 않다면 그러한 열정은 완전히 무해할 수밖에 없다.”

스미스가 이러한 성찰을 1776년에 출간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같은 해 미국이 탄생했고, 미국의 건국 세대는 독점과 다원주의, 국가 권력의 한계에 관한 유사한 통찰을 받아들였다. 스미스가 주로 도덕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서 글을 썼다면, 미국의 헌정주의는 이와 비슷한 원리를 정치적 형태로 구현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국교 제도를 거부했으며, 종교의 자유를 국가가 베푸는 양보가 아니라 정치 질서에 앞서 존재하는 권리로 보았다.

스미스는 또한 종교 지도자들이 국가의 지원 없이 활동할 때 흔히 더욱 헌신적으로 사목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스웨덴에서도 여전히 절실하다. 스웨덴에서는 종교 공동체들이 불투명한 ‘민주적 기준’에 따라 국가 지원금을 받는 반면, 개인이 자신의 교회 공동체를 직접 후원할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세금 공제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스미스는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교회보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유지되는 교회에서 성직자들의 근면함과 헌신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의 결론은 분명했다. 종교적 관용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지한다. 종교적 독점을 포함한 모든 독점은 정체와 갈등을 낳지만, 다양성은 과도한 열정을 누그러뜨린다. 사회적 결속을 보전한다는 명분 아래 양극화를 일으키는 종교적 표현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선의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갈등을 악화시킴으로써 흔히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통찰은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의 맥락을 넘어선다. 현대의 연구도 그가 설명한 양상을 확인해 준다. 브라이언 그림과 로저 핀키는 『거부된 자유의 대가』에서 종교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강화될수록 종교적 갈등과 박해도 증가하는 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질서를 명분으로 가해지는 제한은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그렇게 발생한 갈등은 다시 추가적인 규제를 불러온다. 이 순환은 스스로를 강화한다.

스웨덴의 역사는 이러한 주장을 경험적으로 뒷받침한다. 경건회 금지법은 일치를 증진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분열을 낳았다. 국가가 신앙을 규제하는 일에서 점차 물러난 뒤에야 다원주의와 사회적 안정이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훈은 스웨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종교적 독점이 쇠퇴한 자리에는 흔히 새로운 형태의 정통주의가 들어섰다. 그것은 언어상으로는 덜 신학적이지만 실제로 요구하는 바는 결코 덜하지 않다.

현대사회는 원칙적으로는 다양성을 찬양하면서도 실제로는 순응을 보상하는 경우가 많다. 비공식적인 충성심 검증, 사회적 배제, 이념적 합의를 향한 압력은 과거에 올바른 신앙을 강요하려 했던 시도와 닮아 있다. 스웨덴은 국교회의 독점 체제에서, 다른 확신을 지닌 사람들에게 흔히 제한된 관용만을 보이는 세속적 이념 체제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러한 양상은 서구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반복되고 있다.

현대의 다원주의는 스미스도, 스웨덴의 개혁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도전을 제기한다. 오늘날 서구의 종교 지형은 과거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나타났던 이견보다 훨씬 다양하다. 일부 비판자들은 이슬람주의 극단주의나 특정 종교를 비판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압력을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다양성이 필연적으로 자유를 침식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우려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종교의 자유는 폭력적 지하디즘을 위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으며, 자유주의 사회가 종교법에 포함된 강압적 요소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또한 어떠한 신앙도 공적인 검토와 비판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폭력과 강압, 표현의 억압을 둘러싸고 정당하게 확고한 경계를 설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가 종교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의 자유를 더욱 세심하게 수호해야 한다는 논거이다. 문화적 불안이 고조되는 순간, 정부는 흔히 통제를 강화한다. 표현을 단속하고, 일부 공동체에 특혜를 부여하거나, 안보와 사회적 결속을 명분으로 다른 공동체를 제한한다.

그러므로 다문화적 서구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준(準)국교적 질서로 후퇴하는 것도, 반자유주의적 운동을 방임하는 것도 아니다. 그 과제는 기본권을 보호하되 종교적 차이를 국가가 갈수록 확대하여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 원칙에 입각한 동등한 자유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은 강제된 종교적 일치가 오늘날의 세속적 정통주의보다 자유를 더 잘 보호한다는 주장에 거의 아무런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스웨덴의 역사와 애덤 스미스의 분석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신앙의 진리는 정치적 특권을 통해 강화되지 않으며, 국가 권력과 지나치게 긴밀하게 결합한 신앙은 도덕적 진지함과 독립성을 모두 잃기 쉽다.

따라서 경건회 금지법 제정 300주년이 『국부론』 출간 250주년, 그리고 미국 건국 250주년과 겹친다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우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기념일들은 종교의 자유가 특정 종파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열린 사회를 성립시키는 근본 조건임을 함께 일깨워 준다.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은 우리가 국가 권력이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를 참으로 배웠는가 하는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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