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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이란 대통령실을 위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기밀 여론조사 보고서에서 이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민 대다수가 식량과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운데,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란 시민언론 이란와이어가 입수해 7월 13일 공개한 문건은 ‘이란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사회담당 고문 알리 라비에이가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는 여론조사 기관 ‘아라’가 2026년 5월 실시한 조사를 토대로 작성됐으며, 6월부터 이란 정부와 권력기관 내부에 회람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는 이란 사회가 단순한 경제적 불만을 넘어 심각한 체제 신뢰 위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53%는 근본적·구조적 개혁을 요구했고, 19% 이상은 현 정치체제 자체의 교체를 주장했다.
반면 현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다. 구조 개혁과 체제 교체 요구를 합하면 전체 응답자의 약 4분의 3이 기존 통치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 셈이다.
국민의 정서 상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3% 이상, 구체적으로는 약 63.6%가 일상적으로 강한 분노와 격앙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2025년 12월 실시된 이전 조사보다 약 12%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절반은 미래에 대한 절망감을 호소했으며, 47.7%는 슬픔이나 우울감을, 45.4%는 지속적인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이란 측 조사에서 나타난 63%대의 분노 수치는 갤럽의 국가별 조사 결과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높다. 갤럽이 2024년 조사에서 확인한 국가별 분노 경험 비율 최고치는 차드의 47%였다. 다만 두 조사는 질문과 조사 방식, 표본 설계가 서로 다를 수 있어 단순 수치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위기는 민생 붕괴다. 전체 국민의 81% 이상이 기본적인 식료품을 확보하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약 75%는 필요한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4%는 월 소득으로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충당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란 국민은 경제난의 책임을 국제사회의 제재보다 국내 통치 실패에서 찾고 있었다.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을 묻는 질문에서 46.9%는 정부와 관료들의 비효율성을, 26.3%는 부패를 지목했다. 외국의 제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응답은 20.7%에 그쳤다.
이란 정권이 경제난의 책임을 미국과 서방 제재에 돌려온 공식 선전과 국민 인식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역시 무너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란와이어의 후속 분석에 따르면 행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5%, 의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3%,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30%에 불과했다. 정부 기관이 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보다 무능과 부패가 위기를 키웠다는 판단이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고서가 제시한 대응책은 정치적 책임 규명이나 제도 개혁보다 국민의 불만을 관리하는 데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국가기관이 제재의 영향을 국민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관리와 종교 지도자들이 온건한 표현을 사용하며, 국영방송을 통해 보다 포용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정부가 사회와 직접 충돌하는 정책을 피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정치적 자유 확대나 사법·행정기관의 책임성 강화, 부패 척결을 위한 제도 개혁 등은 주요 해법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란와이어와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를 두고 정권이 위기의 원인을 통치구조가 아니라 홍보와 소통 실패에서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미아드 말레키 선임 연구원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수치가 이란 국민의 실제 분노를 오히려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가 직업과 자유는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응답자들이 스스로 답변을 검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공개된 자료에는 응답자 수와 선정 방식, 지역·연령·성별 분포, 조사 방법 등 핵심적인 통계 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결과를 이란 전체 국민의 여론을 정확히 측정한 확정적 통계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문건의 진위와 조사 결과 또한 외부 기관에 의해 독립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체제 내부에서 정책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작성된 조사에서조차 국민의 분노와 절망, 빈곤과 불신이 이처럼 높은 수준으로 확인됐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수 없다. 말레키는 이란의 시위가 2017년 80여 개 도시에서 최근에는 전국 31개 주, 200여 개 도시로 확대됐다며 새로운 저항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현재 이란 정권은 강력한 정보·치안기관과 혁명수비대, 인터넷 통제 체계를 이용해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억제할 능력을 갖고 있다. 높은 불만이 곧바로 정권 붕괴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식량과 의료라는 생존의 기반이 무너지고, 국민 다수가 경제난의 원인을 외부 제재가 아닌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서 찾으며, 현상 유지에 동의하는 국민이 9%에 불과하다면 문제는 더 이상 일시적인 민생 불만에 머물지 않는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선전 방식의 개선이나 국영방송의 이미지 변화가 아니라 책임 있는 통치와 실질적인 정치·경제 개혁이다. 이 요구를 외면한 채 불만을 통제하고 여론을 관리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이란 정권이 두려워하는 새로운 대규모 저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피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