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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이른바 ‘전승절’을 앞두고 당·정·군 고위 간부들이 전쟁 노병들의 가정을 방문했다며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박태성 내각총리를 비롯한 국가지도간부들이 노병들을 찾아가 축하하고, 김정은 정권의 ‘은덕’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표면적으로는 고령의 전쟁 참전자들을 예우하는 행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병들의 삶과 복지를 살피기 위한 방문이라기보다, 전쟁 기억을 김정은 개인숭배와 체제 충성 선전에 이용하는 정치 행사에 가깝다.
조선중앙통신은 전쟁 노병들을 “위대한 년대의 수호자”, “계승세대의 삶과 투쟁의 귀감”으로 치켜세우면서도 이들의 실제 생활 형편이나 의료·주거·생계 지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어떤 지원이 제공됐는지, 고령 노병들의 건강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유가족들은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보도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김정은에 대한 감사와 충성 맹세가 자리 잡고 있다. 노병들이 김정은에게 “다함없는 고마움의 인사”를 올리고, 간부들에게 당중앙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서술은 북한의 전형적인 선전 문법이다. 노병 개인의 목소리와 삶은 사라지고, 모든 감사와 공적은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된다.
전쟁 노병을 존중하는 일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하다. 그러나 참전 세대에 대한 진정한 예우는 일회성 방문이나 꽃다발, 충성 발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안정된 생활과 의료 지원, 가족에 대한 보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 뒤따라야 한다.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부르며 자신들이 미국과 남한의 침략을 물리치고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승’ 서사는 전쟁의 발발 책임과 수백만 명의 희생,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외면한 채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적 신화다.
1953년 7월 27일은 평화협정이 체결된 날도, 한반도의 전쟁이 완전히 끝난 날도 아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돼 총성이 멈춘 날이다. 그럼에도 북한 정권은 이날을 ‘전승절’로 포장하고, 해마다 군사력 과시와 지도자 우상화, 반미 적대 선전에 활용해 왔다.
더욱이 북한은 과거 전쟁의 희생을 추모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에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주장하는 정권이 다른 나라의 전쟁에 병력과 무기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노병 정신의 계승이 아니라 전쟁 희생의 정치적 악용일 뿐이다.
전쟁 노병들은 체제 선전의 장식물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지도자를 찬양하는 연출된 방문이 아니라 인간다운 노후와 실질적인 국가의 책임이다.
북한 정권이 진정으로 전쟁 세대를 존중한다면 먼저 전쟁의 역사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왜곡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노병들의 이름을 빌려 군사주의와 적대의식을 고취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민의 생명과 평화를 우선해야 한다.
노병을 찾아가는 간부들의 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이 그들의 희생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점이다. 전쟁을 권력 유지의 신화로 소비하고 주민들에게 끝없는 충성과 희생만을 요구한다면, ‘전승세대에 대한 존대’라는 말은 공허한 선전 구호에 불과하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