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가 참담한 장면을 맞고 있다. 평양에서는 노골적인 조롱을 받고, 워싱턴에서는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군사훈련이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축소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얼마나 무게 있게 전달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김여정은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놓고 대한민국을 향해 “가긍한 처지”, “허수아비 군대”라는 식의 막말을 퍼부었다. 연합훈련을 “몸통이 잘린 반쪽짜리 연습”이라고 조롱하며 한미동맹 자체를 주종관계로 매도했다. 북한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분리하고 서울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북한의 선전 선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끼리 맺은 한미동맹과 주민에게 기본적인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북한 체제의 대외관계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도 없다. 한미동맹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계가 아니라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로 맺어진 안보동맹이다.
그러나 북한의 조롱이라고 해서 그 속에 던져진 질문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워싱턴을 향해서는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를 거론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두면서 서울에는 모욕적인 표현을 쏟아붓고 있다. 평양의 계산은 노골적이다. 서울을 건너뛰고 워싱턴과 직접 거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놓고 대한민국이 당사자로서 확고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북한이 노리는 이른바 ‘한국 패싱’은 선전구호를 넘어 현실의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과 거래적 외교가 과거 미국 정부들과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더욱 치열하게 미국을 설득하고, 대한민국이 왜 인도·태평양 자유질서의 핵심 동맹국인지 행동으로 입증했어야 한다.
동맹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국이 우리를 반드시 필요로 하도록 만들고, 적국이 대한민국을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외교이며 국방이다. 자주국방도 말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군사력과 국민의 안보의식, 그리고 신뢰받는 동맹이 동시에 갖춰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특히 지금 대한민국이 다시 확인해야 할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있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차이는 단순히 휴전선 남쪽과 북쪽이라는 지리적 차이가 아니다.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체제와 억압하는 체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나라와 국가가 주민의 삶을 지배하는 체제의 차이다. 그래서 한미동맹의 가장 깊은 토대 역시 군사훈련 몇 회나 방위비 몇 달러가 아니라 자유라는 공동의 가치여야 한다.
그리고 평화는 상대가 우리를 존중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존중은 호소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힘과 원칙, 신뢰를 통해 얻는다.
지금 조롱당해야 할 대상은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 1년 만에 대한민국을 이처럼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든 현 정부의 외교·안보의 무능, 무지, 무기력이다.
<論 說 委 員 室>